시편 90:3-14
“날아가는 인생을 살면서”
2024.5.12 어버이 주일 (박성일 목사)
1.나는 대학원에 다닐 때, 기독교 윤리를 전공했는데,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그 사이에 얼마나 윤리적인 기준과 정서가 바뀌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그 숫자가 늘어나다 보면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서 사람들은 “도덕”을 만들게 되고, 이 도덕이 좀더 체계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윤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 윤리라는 것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하게 되어 있다. /2.과거에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녀가 자기를 보필하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땅에 매장되기를 기대하였다. 왜냐하면 자기가 보아온 것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였고, 덕분에 노년의 시간이 생각보다 무척 길어졌다. 동시에,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오늘날 젊은 세대는 결혼도 잘 하지 않고, 당연히 아이도 가지기를 꺼린다. 이것을 어떠한 정책이나 경제적 지원으로 크게 개선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는 이것이 젊은 세대의 정서나 환경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3.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는 세계가 서로 연결이 되면서,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도 경쟁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과 수준이 요구되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실제로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온 후에 숙제나 공부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출산율이 저하된다고 보고된다. 게다가 전에는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젊은이들은 이렇게 자기의 삶을 희생하며 육아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4.과거에는 경제가 계속 성장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기대치를 가지고 살아갔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은 비싼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직장을 얻기도 힘들고, 과거보다 훨씬 비싸진 학비를 갚아가야 한다. 이러다 보니 세상에 노령층은 늘어나고 젊은 계층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래서 전에는 자신이 죽으면 자녀나 손자들이 자신의 묘지를 관리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줄 사람이 없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이제 더 이상 땅에 묻히기가 쉽지 않다.
5.그러므로 이제는 육체적으로 이동이 불편한 상황에 이르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배워야 하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지만,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신적, 영적인 상태 또한 돌아보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옛날의 어른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에,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었다. 6.그러나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이 조절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오늘날 나에게 살 수 있는 날을 더 허락하셨다면, 사는 시간 동안은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앙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관리하는 것이 위치하고 있다. /오늘의 시편의 저자는 모세이다. 모세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인생 스토리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원래 히브리인의 아이였지만, 죽음을 피해서 나일 강 위에 띄어졌고, 바로의 딸에 의해서 궁중에서 자라났다.
7.그러나 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광야로 도망가야 했다. 그리고 그를 도망가게 만든 사람은 모세가 나름대로 위한다고 생각했던 히브리 사람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벗어나서 도망자의 신분이 된 모세는 처가 집에서 양을 치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에 가장 발달한 문화의 중심지에 살던 사람이 이제는 광야에서 세월을 흘려버리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무려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8.모세는 40년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는 가족들을 보러 이집트로 돌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풀과 바위와 양들만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벌써 나이가 80세에 이른 모세를 하나님은 부르셨다. 아니 이왕 부르실 것이면 미리 알게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에게는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전에 사람의 눈에 그 진행을 보여주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9.그래서 우리가 자신의 눈을 의지하고, 앞으로의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버리게 하시고, 모든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신다. /나는 얼만 전에 수십년간 수천명의 암환자를 치료한 의사의 말을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가망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사람이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문제가 없을 줄 알았지만, 갑자기 숨을 거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구나 하고 생각을 고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0.즉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세월을 흘려버리고 부름을 받은 모세에게 주어진 임무는 영광과 높아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기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자기가 도망 온 이집트의 왕궁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려 200만명에 이르는 큰 무리를 데리고 애굽에서 빠져나와 이동해서 조상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진행시키시고 도움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11.즉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개입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였고, 우상에게 빠지면서 신용을 깎아 버렸다. 그래서 이들은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돌다가 사라졌다. 모세가 처음 하나님 앞에 불리었을 때, 그는 미숙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누구보다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12.모세는 툭하면 원망을 쏟아내고 죽겠다는 소리를 하고, 심지어는 엉뚱한 욕심으로 반역까지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40년을 영도하였다. 광야의 시간은 소망이 없는 징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모세의 잘못도 아니었다. 백성들의 수준이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변호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질 것을 염려한다. 13.모세가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에 마음이 중심이 가 있었는지, 그는 죽을 때에도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 알지 못하게 하였다. 하나님께로만 가야 하는 영광과 집중이 자신에게 흩어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만난 두 인물은 “엘리야”와 “모세”였다(마가복음 9:2-4). 즉, 모세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사용 받는 그릇으로 존재한 것이다. 14.모세가 정말 훌륭한 지도자였던 것은 소망이 없는 죄인들의 무리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John Wesely)는 1791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보통 사람들이 40대 중후반에 죽던 시절에 그는 무척이나 장수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건강이 주어진 것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할 일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노년에 이르러서도 사형수들을 사형장으로 끌고가는 마차에 동행하여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위로하였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성을 지켰다. 15.그래서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에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과 함께한 것이었다”라고 하였고, 그의 고백은 지금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조형물로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정말 형편없고 노예 기질에 물든 사람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재판을 하면서 머리가 아팠다. 특히 이들이 자신이 자리를 몇 주 비운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춤을 추는 모습까지 보았다. 16.자기는 금식하며 하나님의 법을 받느라 산에서 어렵게 깨어 있었는데, 백성들의 수준이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자신의 마음을 붙들고 지도자로서의 십자가를 감당하였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사람들에게 실수를 하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편에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니 백성들을 보면 실망스럽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을 굳세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17.그리고 이러한 그의 인생사는 오늘의 시편에 녹아져 있다. 본문의 1절은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한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남편이나 시댁으로부터 아주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해보자, 그녀가 어디에 가서 위로를 받고 다시 회복하겠는가? 친정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자신이 회복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고 의지가 된다. 마찬가지로, 모세는 하나님의 품이 자신이 거해야 할 곳임을 고백한다. 18.그래서 그는 더더욱 힘을 내서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성막,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실제적인 공간을 만들었고, 여기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의 마음을 충전하고 지혜를 얻었다. 모세는 산과 땅과 세계가 생기기도 전에도 계속 계셨던 하나님의 영속성을 고백하며, 거기에 비해서 사람은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말한다. 3절에 보니 “주께서 사람은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라고 한다. 19.그렇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지나가면 돌아가야 한다. /모세는 80세에 불림을 받아 40년간 섬겼으며, 120세에 그의 수명을 다한다. 이렇게 오래 살았지만, 그는 4절에 보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라고 한다. 즉 자신은 오래 산 것 같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이것이 짧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생을 아침에 돋는 풀같다고 한다. 6절에 보니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른다고 하다. 20.그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말하며 주님 앞에 우리의 죄악이 놓여 진다고 한다. / 심지어는 우리의 은밀한 죄마저도 주님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다고 하니 숨겨질 것이 없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한 자가 되고, 더 나아가서 본이 되고 덕이 되는 노년을 살아가야 그나마 미래를 이을 젊은 세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지 않겠는가? 모든 관계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상대를 대접하는 것에 기초한다. 21.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대접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된다. /나는 전혀 본이 되지 않는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렀는데, 자녀들도 장례식에 오지 않는 분들의 장례를 치러준 적이 있다. 사실 이 분들은 교회에 충성하다 가신 분들이 아니라, 교회의 구제행사에 뭔가를 받으려고 참여했기에 명단에는 있어서,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장례를 진행해 드린 것이다. 22.오늘날 세상은 나이만 많아졌다고 존경하거나 권위를 세워주지 않는다. 노년에 이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잘사는 것이다.
잘산다는 것은 당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의 마음을 얻고 감사함을 얻는 태도와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23.젊은 사람들이 보면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내가 저렇게 늙지 않을거야” 라고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 아래 다듬어져서 훌륭한 신앙인다운 품격을 드러내고 좋은 영향을 끼칠 때, 이 사람은 세대를 넘어서 존경과 사랑을 받고 귀감이 된다. /얼마 전에 한국전쟁에 해병대로 참전하였던 노인에게 젊은 한국 사람들이 선물을 드렸다. 24.그의 말에 의하며 장진호(Chosin)에서 얼마나 추웠는지 상관이 절대로 깊이 잠들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러면서 보여준 것이 바로 선채로 얼어 죽은 동료의 시신이었다. 그는 그 혹독한 추위와 끊임없이 몰려드는 적군을 상대하면서 두려움과 맞서 싸웠고, 이제 그러한 그를 기억해주고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자신이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25.이러한 태도는 비록 세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지만 많은 젊은이들에게 감화를 주고 존경을 얻었으며, 바로 이러한 노년의 단단함과 과거의 수고가 모두 인정받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노년에 있는 분들을 존중할 것을 가르치신다. 심지어는 십계명의 제 5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부모로서 성숙하거나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6.나는 카리브해에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자주 갔었는데, 거기에서는 아버지의 훈육이나 지도를 받고 자란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십대의 어린 남자가 순간의 정욕으로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도망가버리는 것이 일상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꼭 그 나라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아빠가 될 사람들이 도망을 치고, 백만 단위의 아이들이 버려진다. 27.놀랍게도 아직도 한국은 매년 수백명의 아이들을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고 있다. 어쩌면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게 사는 것은 자녀를 신앙적으로 양육하도록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명령에 저해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자신의 나이에 겪는 변화와 어려움에 당혹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항상 방황과 심리적인 동요만을 보여주다 가는 삶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을 낭비하지 않고 충만하고 선하게 채우는 삶을 지향해야 하지 않겠는가? 28./모세는 무려 120세를 살았지만, 노년에 그가 지은 글을 보면,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한다고 한다. 모세는 당시 기준으로 사람들이 70살이면 세상을 떠나고, 강건하면 80살까지도 살게 되지만,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하게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표현한다. 그러니 옆에서 보면 오래 사신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시간이 신속히 사라져 가버린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29.그렇기에 이러한 인생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고, 우리의 시간이 제한되었음을 알고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해야한다. 우리는 우리의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들을 수 있고, 이것에 기초하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 있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노년에 이르러서도 다음 세대에게 본이 되고 사랑받는 사람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30. 그것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시편 89;1을 보면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라고 한다. 시편 136:23을 보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한다. 모세는 노년에 이른 사람이 아침에 주님의 인자하심을 볼 수 있는 영성의 소유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31.주님의 인자하심과 감사한 일들은 주님과 교통하고 그 마음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볼 수 있는 귀한 것들이다. 본문 14절에 모세는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한다. /노년에 이르러 우는 소리만 하고 원망만 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얻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32.노년에 이르러서도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귀함을 얻을 성도로 서기 위해서 좋은 것들로 마음을 채우며,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힘있게 고개를 처들은 꽃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느끼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 이렇게 하나님의 만지심을 경험하는 사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일상에서 발견하고 감격하는 사람이 또한 후세와 공동체에도 귀감이 되고 힘을 주는 것이다. 33.인생이 다 지나간 후에 너무 빨랐다, 덧없다고 후회만 하는 인생이 아니라, 가장 좋았던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던 것을 고백하는 값지고 후회 없는 인생의 소유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신속하게 날아가는 인생이지만, 아침에 주님의 인자하심을 보며 만족하며 감사하는 가운데 그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기쁨을 얻고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