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11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
2024년 6월 9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1.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이 신앙 안에서 탄탄히 서기를 바랐다. 바울이 보니 처음에 복음에 감동한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힘있게 모임을 가지지만, 일시적인 흥분과 열성만 가지고서는 교회가 안정적으로 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과거에 가졌던 인간적인 생각과 못된 기질들이 여전히 신앙공동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있어서 바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단 신앙적으로 체계를 갖추게 된 성도들이 이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 답게 살기를 지도하였다. 2.이러한 흐름이 로마서에 전반적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단지 흥분을 하고, 자기가 뭔가 좀더 남보다 나은 사람인 것으로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제는 나의 못된 혈기와 정욕과 자랑스럽지 못한 기질들을 주님이 다스리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걱정이 많아서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작은 일에도 크게 놀라고 작은 말에도 크게 상처 받으면서 거기에서 생겨난 수 많은 잡념 때문에 믿음의 강한 결단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3.사람이 염려하므로 키가 더 크는 것도 아니고 힘이 세지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유학 와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래서 말했다. “너희들이 나름대로 앞으로 몇 년간 어떻게 할 것이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있겠지만, 자기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목사라서 너희들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현실적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음을 많은 청년들을 통해서 보았다.” /4.자기가 오늘 고민하는 그 문제를 몇 년 전에도 똑같이 고민하는 선배들이 있었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청년들이, 생각지도 못하던 길로 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젊은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수명이 연장되면서 생각보다 오래 동안 세상에 있게 된 수많은 사람들도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산다. 5.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우리를 인도하는 강력한 주체 없이 인터넷만 뒤져서 나오는 정보만 가지고서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불안하기만 하고, 또 당황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로마서는 바로 이렇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신실한 믿음으로 대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신실한 믿음이라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의”(RIGHTEOUSNESS)라고 할 수 있다. 6.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하나님의 기대에 부합하기를 바라시지만, 인간의 나약함과 죄악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를 만족 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우상숭배에 마음을 빼앗기고, 여기에 연동해서 죄악에 빠지기 쉽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자(messanger)들을 통하여 백성들이 패역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자를 죽이고 핍박하였다. 7.그러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사람들은 회개라는 좋은 기회가 있었으나, 이것을 하지 못하였고, 결국은 엄청난 재앙과 고통을 당하고서야 자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자신들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탓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애초에 자기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기에, 이러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많은 미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분노만 품고 있었던 것이다. 8. /그러나 남들이 어떠 하든 간에, 자기의 믿음은 자기가 지키는 태도와 강인함이 필요하다. 잠시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서 휘청거리는 믿음, 누가 한 마디 했다고 넘어져 버리는 믿음은, 껍데기는 믿음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빈통인 것이다. 우리가 순간 순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을 때, 이것이 우리의 “의”(righteousness)가 된다. 창세기를 15장을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9.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를 신뢰하여 가나안 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된 바벨론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큰 무리를 이루게 하실 것임을 약속하셨지만, 그러한 것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밤 하늘의 별을 보여 주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그렇게 많게 하시겠다고 하실 때, 이것을 순수하게 믿었다. 그래서 6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0./즉 우리가 너무 거룩해 지거나 행실이 뛰어나거나 엄청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축복으로 이끌 것을 신뢰하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믿음도 공격받고, 충동을 받기도 한다. 세상에 충동을 한번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충동이 닥쳐와도 그 심령의 무게가 대단해서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영성을 키운 사람이, 이것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11./몇 년 전에 플로리다를 강력한 허리케인이 쓸고 갔다. 바닷가 근처에 사는 것이 평상시에는 좋아 보이지만, 이렇게 허리케인이 몰아치면 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바닷가에 있던 대부분의 집들이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몇몇 집들은 멀쩡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 기초가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흥분해서 충동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자신에게 있다. 그 기초가 약하다는 것이다. 12.특히 이민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성도들의 약점은 그 기초가 약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일학교를 다니고 중고등부(youth group)를 경험하고 청년부에서 봉사하다 중년에 이른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교회 다니기 이전에 가졌던 기질과 세상적인 생각들이 의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강하는 방법은 일상적으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반성하고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13.예를 들어보자, 하늘을 날며 나라를 지키는 전투기는 무척 비싸다, 헬리콥터도 당연히 비싸다. 그런데 한번 군대에서 이것들을 사서 들이면 무려 40년을 사용한다. 최근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밀리터리 매니아인 나는 놀랐다. 1950년대에 제작된 무기들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탱크는 수시로 전체를 갈아 엎는데, 전투기의 경우에도 기체보강(structure reinforcement)을 한다. 즉 약해진 부분들을 개수하므로 다시 수십년간 날 수 있도록 보강하는 것이다. 14.성도도 활력있고 힘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과거의 기질이 아니라, 성경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자신의 낡은 부분을 보강해야 비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가 낡은 존재가 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죄”이다. 죄가 우리의 영적인 구조를 약하게 하고, 날개가 꺾이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정죄하는 것으로 끝내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다듬어져서 낡은 부분을 떨구어 내도록 도우신다. 15.본문 전장인 4장을 보면 믿음에 대한 예시로서 아브라함이 적혀 있고 7-8절은 이렇게 말한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결국 우리가 죄를 지어도 믿음으로 그것이 씻김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징계의 사유로서 우리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16.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중심은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다는 것이다. 4:23-24를 읽겠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의롭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이다. 17.같은 장 25절을 읽겠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목적은 바로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로워저야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가서 그 심판을 통과할 수 있기 때이다. 그래서 본문 1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18.누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인가?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약한 부분을 해결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편하고 소망있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내가 어렸을 때, 동네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 가게는 나의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봉사하시는 남자 권사님이 운영하셨는데, 7살 때인가, 내가 교회 사택(PARSONAGE) 앞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장난치다가 마침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 분을 쳤다. 19.이렇게 사고를 치고서는 너무 겁이 나서 그 구멍가게에 가지를 못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과자도 먹고 싶은데, 마음 속에 불편함이 있으니 가지를 못했던 것이다. 기껏 한다는 것이 동생이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사달라는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정확하게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화평을 누리게 된 사람은 이런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20.물론 바울 당시에 예수를 믿는다고 모두들 격려하고 잘해보자는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로마는 이후에 기독교인들을 핍박했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자 사람들은 지하로 파고 숨어들었다. 거기서 통로에다 조상의 뼈를 묻고, 그렇게 믿음의 대를 이어 나가며 지킬 것을 지켰고, 결국에는 자신들을 핍박하던 제국을 믿음으로 얻어냈다. /의로운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감당 못할 극복의 힘을 가지게 된다. 21.본문 3-4절을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한다. /진정한 성도가 어려운 때에 금방 변심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그 마음에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22.그래서 당장 어려움이 있으나 결국 이것을 지나가게 하시고, 어려움을 추억과 오히려 자랑거리로 삼게 하실 분을 의탁하며 좋은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내하지 못하고 순간순간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서 가볍게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수준이 어떠한 지를 드러낸다. 23.세상에 어려움을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을 인내하며 견뎌내는 것이 우리의 연단이 되며, 연단을 거친 사람만이 소망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30대에 들어섰지만,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신학교에 들어갔다고 해보자. 교회에서 나름대로 찬양 인도도 잘하고, 소모임도 잘 인도하였기에, 자기가 충분히 들어갈 자격이 있고, 자기가 목회를 하면 모두들 자신을 지지해주고, 쉽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24.그런데 평신도로서 교회행정과 치리의 깊은 곳을 보지 못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자기가 담당해보니, 인간안의 온갖 더럽고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목회자로서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현장경험이 적어도 15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오해도 받고,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고…..그렇게 연단을 받으면서 더더욱 하나님만 붙잡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겪은 목회자가 소망을 줄 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25.만약에 이런 과정 없이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목회지를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연단을 통과하고 소망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소망마저 갉아먹는 사람이 아니라, 빈약한 소망을 풍성하게 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주님의 도구가 되고, 사랑받지 않겠는가? 26.이렇게 소망 있는 사람은 연단 받은 사람이고, 연단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통과하고 나면 그러한 신뢰가 더욱더 단단해 진다. 본문 5절을 읽겠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은 곧 성령충만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렇게 성령이 가득한 사람이 소망 있는 성도로서 자랑스럽게 서게 되는 것이다. 27.우리가 성령충만한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찬양을 입에 달고 사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럴만한 것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를 열어 주신 것 때문이다. 6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예수님이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게 되셨음을 말한다. 28. 7-8절을 읽겠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예수님을 통하여 증명하셨는데, 우리는 자기 마음에 작은 불만만 생겨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섭섭해 하는 가운데 거리를 두기도 한다. 이것을 바로 약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9.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과정마저 지나가며 자신의 믿음을 단단하게 키울 때, 이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중간 중간에 맘 상하는 일이 있어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연결하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마음의 즐거움을 잃지 않게 된다. 즉,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단단해진 믿음의 의를 누리는 수준에 이른 사람이다. 30.놀랍게도 세상에는 좋은 것을 받고도 자기가 지켜내지 못하면서 여전히 불평과 분노와 고통 속에 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그 어려움 마음 가운데서도 원망할 대상을 찾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갈아 엎으시고 새롭게 하실 능력의 주님이시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신뢰하게 된 사람은 주님의 귀한 열매와 같은 존재가 되고, 삶 속에서 주님께 꾸준하게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사람이 된다. 31.한번 사는 인생, 평생 자기도 자기를 이기지 못하고 주님께 근심만 기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가운데 그 영성의 창고를 찬양과 말씀으로 가득 채운 다섯 달란트의 종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32.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께 나는 어떻게 나의 사랑을 드러낼지 고민하고 기도하고 실행하는 사랑스러운 성도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가운데, 연단을 이겨내고 소망있는 성도가 되어서 그 삶의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