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4-06-14 18:24
갈라디아서 5:5-16 “자유에 대해서” 2024년 6월 16일 주일 설교문 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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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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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6 갈라디아서 5.5-16 자유에 대해서.docx (33.7K) [10] DATE : 2024-06-14 18:24:53

                                            갈라디아서 5:5-16 “자유에  대해서” (박성일 목사)

             1.“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은행원인데, 억울하게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자유를 위해서 탈옥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은 숫가락 뿐이었다.  그래서 이 숫가락으로 오랜 세월 동안 굴을 판다. /이제 비가 쏟아 지는 날, 감옥을 탈출해서, 비 아래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2./자유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하나 더 있는데, “브레이브 핫”(Brave Heart)에서, “월레스”라는 스코틀랜드의 전사가 잉글랜드 왕에게 잡힌다. 그는 천천히 몸이 베어지면서 죽게 되었는데, 자비를 구하면 더 일찍 죽여서 고통을 덜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자비를 외치라는 압력이 들어오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외친 것은 “자유”였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억압을 벗어나서 자유하고픈 욕망이 있다. /내가 전에 살던 오하이오의 남단에 “신시내티”라는 도시가 있고, 이 도시는 건너편인 켄터키의 “뉴포트”와 오하이오 강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3.흑인 노예가 이 강을 건너기전에 잡히면 다시 노예가 되거나 죽지만, 오하이오 강을 건너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살얼음 위를 건너간 많은 흑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누구도 억압받거나 통제 받거나 착취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말하고 의견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자유에는,  마치 언니를 어린 여동생이 따라오는 것처럼 따라 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책임감이다.

           4.자기 좋은 데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해지는 것이 자유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마음 좋은 대로만 아무 제한 없이 사는 방법은 없다. 만약에 사람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있다면…예를 들어, 원수를 당사자들이 직접 갚아도 무방하다면, 세상에 살아 있을 사람이 별로 없다. 5.//몇 년 전, LA에서 젊은 사람들이 광란의 축제를 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도록 춤을 추고 술 마시고, 육체의 쾌락을 탐닉했다. 물론 여기에는 마약이 따라 붙게 되고, 갑자기 심장이 멎어서 여러 명이 죽었다. 광란의 축제가 벌어지는 곳에서는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자기 육체의 쾌락을 쫓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로워 보이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6.남이 뭐라고 압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싫고, 그렇다고  욕정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도 나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자유함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자유함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갈라디아서는 기독교인의 독립선언서라고 불리는 책이다. 율법이 인간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구조에서,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해방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율법이 악한 것인가? 7.이 글을 쓴 바울은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한 적이 없다. 율법이 있기에 자기가 자신의 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잘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 /신앙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조차 충실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큰 착각이다. 내가 서울에서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 30대 중후 반쯤의 독신의 여자 집사님이 있었다. 이분은 자신의 은사가 청년양육이라고 생각해서, 청년들을 상대로 1대 1로 양육을 하였다. 8.그런데 정작 교회의 기본적인 모임과 예배는 불성실하게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청년들 몇 명은 따르고 있었지만, 교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양육을 하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는 뭔가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9.더더군다나 율법은 단지 상대방과 비교해서 내가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성 가운데서 자기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었다. //그런데 원래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이 되어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이 다른 여자보고 “마담”이나 “호스티스”라고 부른다면 상당히 기분 나쁘게 들을 것이다. 10.원래는 상대를 존중해 주는 호칭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술집여자를 부르는 이미지로 굳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들을 보면, 새로울 것도 없다. 예수님은 본질적인 신앙의 모습들이 왜곡 되어지거나 변색되어진 것을 지적하시고 갱신하시기 원하신 것이지, 전혀 뜻밖의 것들을 이야기 하신 것도 아니다. /이처럼 본래의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마음에 편하거나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색되어지기 마련인데, 바울이 보니, 당시의 사람들이 신앙의 가치를 남들과 자신을 율법으로 비교해서, 우월감이나 성취감을 누리는 신앙의 양태가 번져 나가고 있었다. 11./그러다 보니, 결국 예수의 위치가 의미를 잃어 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구원에 있어서 예수님의 위상을 올리려고 애를 쓰게 되었다. /오늘날 바울이 영향력이  것은, 그가 예수를 올리려고 수고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솔직히 존중 받고 싶고, 높임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이 욕구를 신앙적 질서에 맞추어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인은 자기를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주님을 드러내려고 할 때,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승리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다. 12.빌립보서 2:5-11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시니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주시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고 한다.

        바울은 단지 율법주의를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새로운 신앙의 단계를 강조하였고, 이러한 상태에 이르는 자가 진정코 신앙인의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청년 시절, 신학교 채플에 헬라어로 쓰여있는 글이 항상 심장을 뛰게 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13.---우리가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주님께 깊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매어 놓는 것으로부터 해방을 얻고,  깊은 신앙의 경지로 뛰어 들어야 하는데-----,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이렇게  발짝 뛰어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깊이 있는 신앙은 굳은 결의와 단단함 속에서 누려지는 것들이다.14. /우리 안에는, 우리가 더 깊이 전진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누르고 있는 수많은 두려움과 염려,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실상은 충분히 넘어 설수 있는데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다. 아주 실생활적인 예를 들어보자, 집 안에  바퀴벌레가 들어왔다고 하자, 그러면 여자들은 난리를 치고 소리를 질러댄다. 이럴 때, 벌레를 잡아주면 남자의 위상이 올라가고, 같이 피한다면 가장으로서의 존경 받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15.어떤 사람은 손가락 만한 거미만 봐도 기겁을 하고 소리를 쳐대는데, 내가 옆에서 보면 실제로 소리 지르는 사람이 거미보다 수만 배는 무겁다. 자기가 훨씬 강한데도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보면, 사람 안의 공포나 불안의 발생은 상대의 실체를 정확이 알아서라기 보기 보다는, 머리 속에 박힌 “이미지 우리로 하여금 주저하고 무서움에 떨게 하는 것을   있다. 16.그리고 이렇게 사람의 마음 속에 불안과 공포를 학습시킨 사람은 대부분이 자신의 엄마이다. 작은 벌레만 나타나도 소리지르고 큰일이라고 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사람들은 큰일에 대한 기준이 아주 낮아진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큰일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도 큰일로 인식을 하니, 어찌 용기를 내기가 쉽겠는가? 세상에 큰 일 천지인데… 17.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자극을 준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이가 자극받아서 열심히 하기 보다는, 그 마음 속에 불안의 영역만 넓혀 주게 된다. /마찬가지로, 할례를 주장하고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은혜 가운데 살려는 사람들마저 흔들어 댔다. 18.바울은 이러한 흐름 속에 그대로 빠져 버리면, 예수가 들어갈 자리가 축소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의 흐름은 그렇게 가지만, 바울 자신은, 자기를 부르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하여 위협을 받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감당하기로 한다.

        1장을 보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강하게 경고하고, 10절을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한다. /19.사람의 기쁨을 구하며 입맛에 적당히 맞추어 주려고 했던 사람들은 누구인지 지금은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사람을 기쁘게 하기 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의 핍박을 따라가고자 했던 바울은 우리에게 커다란 가르침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사도행전 26장을 보면, 구금되어 있던 바울은 베스도 총독과 헤롯 왕 앞에 나가서 자신을 변증할 기회를 가진다. 여기서 자신이 예수를 만난 것과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하자, 베스도는 바울이 공부 많이 해서 미쳤다고 하고, 헤롯은 바울이 말 좀 해서 자기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한다. 21.여기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29)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결박된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한다. 묶여 있는 사람은 바울인데, 신앙의 높은 곳으로 상승한 신앙인이 보기에 오히려 풀려 있는 사람이 갇힌 자로 보인 것이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생활이나 마음의 상태가, 별로 발전을 하지 못한 것 같은 실제의 모습 속에, 때로는 자괴감도 느끼고, 때로는 벗어나려고 조금 발버둥도 쳐보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포장해서 남들이 못 알아 보도록 신경을 쓰기도 한다. ------22./그러나 13절을 보니 성도들이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유는 자신의 육정을 짐승처럼 해소하는 그러한 저급한 방종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선을 위한 선택을 하고 사랑으로 종 노릇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23.그리고 율법은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라는 말씀에서 이루어졌는데, 만일 사랑을 선택하기 보다 혼란과 비방과 자기 우월감을 채우는 쪽으로 선택을 하게 되면 서로 물고 먹다가 피차 멸망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동물적인 것이 아니라, 더욱더 지고한 곳으로 끌고 가기 위한 선택과 결단을 수반하는데-----, 24.이것의 주체가 단지 우리의 감정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가 우리를 망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배운 작은 윤리나 인격으로 자신의 인생의 중심을 잡고 가려고 애를 쓴다. 당연히 자기 욕정대로 사는 사람보다는 이러한 사람들이 훨씬 더 존경스러워 보이지만, 내가 품위 있게 산다고 그것이 구원을 이르는 것 또한 아니다. 25.우리 안에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이 가득하면, 전에는 육체적으로 누리지 못하거나 하지 못한 것들 때문에 괴롭고 속상하고 하던 것들이 이제는 별로 자신의 마음을 크게 휘젓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가운데 자유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성령을 통한 신앙의 힘을 별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6.예수님의 비유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신앙은 귀한 것에 모든 것을 집중 할 수 있는 분별력에서 드러나지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아무도 인생을 끝까지 가본 사람이 없다. 우리는 모르는 곳을 향하여 달려나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성령의 인도를 받는 다는 것은, 우리 안의 불안과 격정을 잠재우는 것이요, 이렇게 비생산적인 과정과 충동을 벗어나 안정감과 단단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자신감이 되어 진다. /27.이렇게 단단하니 영적인 전쟁에서는 계속 이기는 사람이고, 이러한 자신감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우리 마음 속의 어두운 부분들을 부서뜨리고,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의 빛으로 자신의 영혼을 채워 나가는 것이다. 누가복음 1:78-79절을 보면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 하시리로다”고 한다.

         나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기는 하지만, 그게 다인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그러면서 자기 안에는 자기를 이끄는 나름대로의 기준이나 아집 같은 것들이 자라난다. 28.자기는 그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자기가 세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상당히 빈약하다. 그러니 겉으로는 자기가 뭔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스스로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떠 받치는 것들은 상당히 부실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통하여 일생 동안 자신을 떠받치는 것을 상실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29./자기가 자기 아집과 세상의 욕정을 약간 뒤틀어 놓아서 의미를 부여한 상태로 자기의 삶을 이끌고 가려고 하지만, 자기가 자유함을 누리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허무함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세상의 질서와 상당히 배치되고,  자체로 역설적이기도 한데, 자기 혈기대로 살려고 하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잡힌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 무거운 짐을 넘기고 의지하고 찬양하며 살면,  안에서, 강력한 분의 도움을 얻는 다는 즐거움이 우리의 자유가 된다. /30.이러한 상태에 있게 되면----, 전 같으면,  남의 말 한 마디 듣고서 괴로워서 힘들어하고 미워하고 했을 것도, 넘어설 만한 능력이 서게 된다. 즉 자기가 죽고 주님이 사는 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2:20절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31.갈라디아서를 보면 미혹케 하는 자들에 대해서 대응하는 바울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음을 읽게 된다. 십자가는 자기가 죽는 곳이다. 그런데 오히려 주님이 이끄시는 삶이 더욱더 힘을 주시고 승리케 하는 것을 보면서, 십자가는 저주의 장소가 아니라, 승리의 장소요, 자유를 얻는 곳임을 알게  것이다. 32.그래서 십자가가 자신의 수치가 된 것이 아니라 자랑이 되어 버렸다. /6:14절을 보자 내게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33.자기를 불안하게 하고 격동시키고 분노하게 하고, 늘 불만에 차 있게 하고, 원망하게 하고, 시기하게 하던 감정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버리니, 이제는 그러한 것들의 매임에서 벗어난 자유함을 입게 된 것이었다. //34.기도하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짓누르는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용기와 결단을 달라고 하고, 마침내 그것을 실천해 내어서, 그러한 기쁨이 삶에 놀라운 힘을 주고, 더 높은 신앙의 경지로 비상하는 놀랍고 위대한 일들이 여러분 각자의  심령 가운데에서 나타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위하여 사는 가운데, 진정한 자유함과 높여주심을 누리는 복되고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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