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4-07-09 21:14
맥추감사주일 2024년 7월 7일 시편 100:1-5 “감사함으로 들어오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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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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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맥추감사 시편 100.1-5 감사함으로 들어오는 자.docx (24.7K) [10] DATE : 2024-07-09 21:14:22

맥추감사주일 2024년 7월 7일

 시편 100:1-5 “감사함으로 들어오는 자”(박성일 목사)

    1.우리는 누구나 항상 땅을 밟고 산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서 이제 결혼한지 얼마 안된 항해사는 출항하고 10개월이 지나야 아내를 만날 수도 있다. 과거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범선을 타고 세계를 누빌 때에 그들은 3-4년이 지나야 집에 올 수 있었다. 2.그럼에도 성인 남성의 1/4이 배를 타고 세계로 나갔다고 한다. 그러니 열악한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이요, 폭풍우를 만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특히 아르헨티나 아래 쪽에서 남극 사이를 지나는 “드레이크 해협”은 세계적으로도 파도가 거칠고 높기로 유명한 곳이기에, 여기를 지나던 수많은 배들이 차가운 바다속으로 가라 앉았다. 3.그렇기에 이곳을 통과하고 이제 잔잔한 바다를 보게 된 사람들은 평화의 바다라고 해서 “태평양”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땅을 밟는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요 위안이요 기쁨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항해하는 사람들의 기록물을 여러 개 보았는데, 결국 하는 말은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아야 한다.4.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을 쉽게 생각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미숙한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연구에 의하면,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으면 자신의 괴로움을 더 약한 존재에게 터뜨리는 경향성이 본능적으로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밖에서 자신도 약자이고 고생을 한 사람들이 주로 술에 취해서 아내를 구타하고 심지어는 아이들을 때리기도 한다.

5.내가 아는 한 젊은 여자 목사님은 자기 아버지가 이민 1세대 였는데, 나름대로 고생을 했겠지만, 집에 돌아와서 술에 취해서 엄마와 자신들을 상습적으로 구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어린 동생과 같이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 괴물을 없애 주세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까 어느덧 자신은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에 이상한 렌즈가 끼워진 것처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6.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편협하고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하였으며 이렇게 보는 눈이 삐딱하니, 남을 이해하는 것도 어그러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가정에서 자란 여자들이 남성에 대한 혐오를 품고 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자기 남편이 굉장히 인격자라서 자신의 눈에 씌워진 렌즈를 벗겨 주었다는 것이다. 7.그러니까 좋은 부모를 만날 복은 없었어도 좋은 배우자를 만난 복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많은 젊은 부부들에게 말하기를 오늘날 배우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불만을 가지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지금의 배우자는 자기 수준에서 만날 수 있고 최고의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8.놀랍게도 사람들은 자기와 더 많은 사랑과 좋은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존재에 대해서 친절하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또 가까이 있으니까 시기도 많이 하고 험담도 많이 하고 지적질도 많이 한다. 여러분은 지적질을 많이 당했더니 자기가 발전했다고 지적질을 한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9.게다가, 지적을 많이 한 사람에게 역으로 지적을 하면 난리가 난다. 왜냐하면 지적은 자신이 하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을 지적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본능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수용할 정도의 사람은 아주 그릇이 크고 연단이 잘 된 사람이기 마련이다. 10.예수님은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그 내용으로 자신이 비판을 받고, 남들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들로 자신 또한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오늘날 내 옆에 있어 주는 사람에게 혹시 불편한 생각이 들고 화가 난다 할지라도, 나의 일상의 한 부분인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여자들은 남편이, 남자친구가 여자를 이해 못하고 공감 못한다고 화를 낸다. 11.그러나 남자도 여자가 자기를 이해 못한다고 짜증이 나는 것은 똑같다. 단지 그것이 남자답지 않고 대범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뿐이다. /차를 살 때, 남자는 엔진이 몇 마력인지, 안전기능이 무엇이 있는지를 보는데, 여자는 차의 색깔을 본다. 그래서 남자가 아무리 좋은 기능에 신뢰성이 있는 차량을 구입해도 색깔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아주 일을 잘 못 처리한 것이다. 12./내가 18살 때 처음으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5학년짜리 여자 아이들 반을 맡았는데, 어느 주일 오후에 공식적으로 선물을 주었는데, 머리 띠였다. 나는 6개의 머리띠를 사면서 5개는 분홍으로 샀다. 분홍 머리띠가 다섯 개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는 노랑색으로 샀다. 내가 보기에는 분홍이라 노랑이나 다 예뻐 보였다. 그랬는데 갑자기 노랑 머리띠를 받은 애가 고개를 숙이고 우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다 예뻐 보였지만, 그 애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13.이렇게 우리는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본다. 그러나 자꾸 정죄하고 판단하고 지적하기 보다는,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으로 우리는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다. 비난과 비교와 판단의 말은 거두어야 한다.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 행복해졌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14.어쩌면 자신 안의 열등감과 불안함이 자꾸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힘들게 한다. 그러니 이것 또한 상당히 미숙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 머리 속을 이제는 은혜와 말씀으로 채우는 일을 일상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감사의 고백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마치 마른 땅에 강이 새로 생기면 꽃들이 따라서 피는 것과 같다고 설명 할 수 있겠다. 15.감사는 감사한 일들만 기가 막히고 운이 좋게 생겨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내 안에 은혜를 흐르게 하셨을 때, 같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긴 기쁨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물을 보면서도 그러한 시각으로 보게 된다. 술 먹고 구타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모든 남자들에게 왜곡된 선입견이 심겨진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안에 은혜와 말씀의 충만함을 통한 평안이 있으면 세상을 분노로 보던 눈이 이제는 바뀌게 되는 것이다. 16.그래서 오늘 시편의 저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찬양을 부르겠다고 하지 않고, 1절을 보니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 지어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통한 기쁨을 채운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입을 보아 하나님께 찬양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꽃들도” 라는 찬양의 가사를 보면 “이곳에 생명 샘 솟아나 눈물 골짜기를 지나 갈때에, 머잖아 열매 맺히고 웃음소리 넘쳐 나리라”고 한다. 17.우리는 분통과 원망과 시기의 썩은 물질을 분출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생명 샘이 솟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요한복음 7:38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다. 18.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체의 마음을 살리고, 잘 해보자는 의지와 자발성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주변에 힘을 주고 생명수를 흘려 보내는 사람 눈에는 자연도 하나님께 찬양하는 존재로 보이게 된다. 19.그래서 이렇게 노래한다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한번 사는 인생인에 끝까지 누군가를 원망하고 섭섭해하다 가는 삶이 아니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를 찬양하는 진정한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본문 2절을 말한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 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 지어다.” 20.그렇다 우리가 압박 받거나 어쩔 수 없이 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나아갈 때 기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영성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며 행복이다.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고 우리는 그의 것이고 그의 백성이고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시편 23편을 보면서 우리는 양을 치던 목자였던 다윗이 자신의 입장에 하나님을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21.그런데 5절에 보면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이 왕이나 선지자를 세우는 구별된 의식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양을 치는 사람들은 양의 머리에도 기름을 부었다. 특히 코에는 유막(oil layer)이 생기도록 잘 발라 주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파리가 구더기를 양의 코에 낳지 못하기 때문이다. 22.양의 얼굴에 구더기가 생기면, 머리까지 파고 들어가서 양을 미치도록 괴롭히다 죽게까지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양으로서 은혜의 기름을 온전히 적셔야 우리의 틈을 노리는 파리 같은 사탄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이다. //23.그런데 양을 보고 있으면 빠르지도 않고 특별한 무기가 있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다. 어떻게 저런 동물이 살아 남았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심지어는 자기 털도 남이 깎아주지 않으면 너무 비대해져서 제대로 활동할 수도 없다. 몇 년 전에 호주에서 무리를 이탈한 양 한 마리를 찾았는데,  털을 깎아 주지 않아서 양털 무게만 50kg에 육박하니 관절도 다 상하고, 털에 짓눌려서 피부도 다 상해 버렸다. 양은 심지어 시력도 좋지 않다.

24.솔직히, 우리가 다 조금씩 아는 지식으로 자기 주장을 하면서 자기가 뭔가 아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전에 어떤 한국에서 오신 60대의 초신자가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굳이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기사에 대해서 읊으시는 것이었다.  사람은 오히려 조금 알 때, 자기가 많이 안다고 착각한다. 25.신앙생활에서도 이런 모습들은 나타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양이라는 것은 우리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양들을 이끄시는 목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 목자는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나를 만족하게 하신다.  양은 맹수와 맞받아 싸울 능력도 없지만, 목자가 막대기와 지팡이로 지켜 주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26. 양이 참 미련하고 약하지만 한가지는 잘 하는데 주인의 소리를 알아 듣는 것이다. 실제로 양을 칠때에는 여러 집의 양을 모아서 위임을 받은 양치기가 몰고 나가는데, 나중에 돌아올 때에는 주인의 소리를 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스스로를 보았을 때, 부족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주님의 말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그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다. /27.그리고 일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며 산 사람은 주님께 경배하러 가는 자리로 가면서 마음 속에 감사함이 생겨난다. 나는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비디오로 홍보하면서 그 안에서 사실 남들이 잘 모르는 갈등이나 어려움을 겪는 교회나 선교 단체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인터넷으로 비디오를 보면 다들 은혜 충만인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28.신앙생활을 하면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교회에 올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고, 이러한 예배의 일상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전쟁은 누가 피하는가? 전쟁 준비하기 귀찮고 돈 아깝다고 아예 준비하지 않거나 힘이 없는 대상이 자기의 기대와 달리 전쟁을 겪게 된다. 그러나 전쟁을 대비해서 무기를 발달시키고 백성들을 군인으로 훈련시킨 나라가 오히려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29.교회의 평강을 위해서 기도하고, 오늘 평화롭다면 그것을 감사하고 지속하기 위해서 애쓰는 성도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사랑받는 백성이요 주님의 무릎에 앉을 양이 되는 것이다.

이어서 4절은 노래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므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  한번 사는 인생 불만과 분노할 대상만 찾는 불쌍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의 감사함과 기쁨이 세상의 자연까지도 찬양하는 것으로 받아지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 즐거운 사람이 바로 신앙인생을 잘 산 사람이다. 30.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대대로 성실하게 이어지게 하신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분노의 렌즈가 아니라 은혜와 찬양의 눈을 받은 아이들이 또 그렇게 선한 흐름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시다. 시편 137:25을 보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한다. 31.우리가 아는 것처럼 감사절은 추수한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추수를 약속하신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내 창고에는 불만과 남탓과 비교의 구데기와 가라지만 가득한지, 아니면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찬양과 감사가 가득한지를 돌이켜 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쓸어내야 할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쓸어버리고, 좋은 것들도 채우는 풍성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32.이런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하지 않겠는가? 감사는 환경에 따라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다듬어진 신앙인격이요, 능력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오랜 세월 주님과 꾸준히 가까이 동행하는 가운데 자라나는 것들이다. 우리는 자신 안에 최상급의 감사와 찬양을 채움으로, 결산의 날에 부끄러움 없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다섯 달란트의 종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33. 감사의 시작은 은혜를 채워 넣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찬송가 23장의 가사처럼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고 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그 마음에 찬양과 감사가 흘러나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즐겁고 자신 있는 사랑스럽고 능력있는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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