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3:8-18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
2024.7.14 주일 설교문, 박성일 목사
1.얼마 전에 우연히 가게에 들러서 물건을 보았는데, 한 티셔츠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셔츠 위에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한 구절이 생각나는데 자기 아내는 햇살이 빛나는 것과 폭풍우를 둘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아내는 어느 때는 누구보다도 밝고 따듯해 보이지만, 또 성질이 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서 그를 괴롭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우리가 한 대상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이 한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 함부로 규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아주 얄팍한 아니, 얄팍정도도 안되는 작은 지식으로 상대편에 대해서 인상을 규정짓고 그것이 진리인냥 잘 바꾸지 않고 산다. 3.비록 상냥한 아내이지만, 뭔가 화가 나거나 질투가 꿈틀 거린다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듯이, 우리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양한 인격을 품고 살아가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1977년 오하이오에서 24개의 인격을 가진 사람도 존재했었다. 이 사람은 때로는 어린 아이처럼, 때로는 어른처럼 인격이 왔다 갔다 했다. 4.//몇 년 전에 한 아기 엄마가 세례 문답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서 물었더니, 아기를 키우다 힘이 들때면, 자신 안의 악한 존재가 나와서 완전히 다른 모습의 자기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면 은혜 받고 변화 받은 다음에 잘 살아 보려는 현재의 모습도 있고, 안타깝지만 과거에 상처받고 분노해서 마음에 먹구름이 덮고 있던 시절의 나 또한 당시의 기억이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은 채로 있다가, 은혜로운 내가 약해질 때면 치고 올라와서 나를 전복하려고 한다. 5.어떤 사람은, 과거의 나는 참 은혜를 사모하고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밀려나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저자인 다윗을 보면 어렸을 때는 양을 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일들을 경험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그 마음에 용기와 신앙적인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6.그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바, 모든 사람이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적군의 장수를 보고 감히 나서지 못했을 때, 나이도 어리고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았던 다윗이 자기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싸움의 결과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7.45절에 보면 다윗은 제대로 무장하고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골리앗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신뢰하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다윗이었다. 어린 자신의 목숨마저 하나님께 의탁한 것이었다. 8.그런데 이후에 다윗의 목숨을 위협한 것은 골리앗 같은 적군이 아니라 바로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장인이 있었다. 사울은 연단 없이 왕위에 오른 사람이었는데, 결국 그러한 사울은 높은 자리에서 오는 욕심이 스스로를 망치게 하였다. 그래서 다음 왕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대단한 연단을 통과하게 하신다. 그리고 특히 다윗이 마음 상한 부분은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냐는 억울한 상태였다. 9.그러니 다윗의 마음 속에는 누구보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던 시절의 자신도 있고, 배반당하고 억울해서 밤새도록 괴로워하던 모습도 있었다. 아마 누구라도 이렇게 즐거운 자신과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본문 첫 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고 한다. 10.사람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커다란 약점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러한 시간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겨낸다면, 그러한 괴로운 시간도 선으로 돌려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베드로전서 4:12-13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나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 /11.나는 나도 고난을 겪기를 원하지 않고 성도들도 그렇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교통사고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과 같다. 원하지 않지만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렵고 마음이 불편한 시간을 통해서 내가 과거보다 더 단단해 진다면 그것이 바로 어려움이 주는 연단의 좋은 결과가 된다. 가령 훌륭한 복싱 챔피언이 있다고 하자. 그는 누구보다 더 많은 스파링을 하면서 누구보다 더 많이 맞은 사람일 것이다. 훌륭한 아이스 피겨 스케이트 선수는 누구보다 많이 얼음에 넘어졌을 것이다.
12.몇 년 전에, 교회 집사님 내외가 밖에 나갔고 교인들도 단체로 밖에 나갔는데, 나는 집에 있었다. 그런데 집사님 딸이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데 스케이트 날에 다리가 베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사님이 집에 도착 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도와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Urgent Care”에 갔더니 스케이트 관계자가 와 있었고, 내가 인계 받았다. 12살짜리 어린 소녀는 다리가 베에서 울상이었다. 아무튼 같이 치료실에 들어갔는데, 살이 벌어진 부분을 꼬매는 것이었다. 13.여자 애는 아파서 울부짖고 나는 그 애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픈 일을 겪고서도 여전히 스케이트를 탄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노련해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약해지고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배우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 생긴다. 14.앞에서 언급한 베드로 전서 4장은 신앙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위한 내용인데,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베드로는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한다. /어려운 시간을 통해서 상대에게 자기 감정을 폭발하고 멋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더욱더 절감하게 되며 그래서 더 사랑하고 덮는 것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15.이렇게 자기 안의 모든 인격과 경험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치환할 때, 바로 오늘날 나를 여기까지 이끄시고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신 것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게 되고, 더욱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2절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한다. 즉, 다윗의 마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서 받아지게 된 것이다. 16.다윗은 중간에 속상한 일도 겪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향한 의도가 선하다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파멸에서 속랑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는 것을 노래하고 5절에는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라고 한다. 17.그렇다면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억울한 것들에 대한 앙금, 복수하고 싶은 마음, 부당한 세상에 대한 분노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는 질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비록 부당한 일을 겪을 수 있지만, 그 분노에 잡혀서 비뚫어진 인격을 끝까지 가고 가는 사람으로 살기보다, 심판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맡기고 나는 나의 마음의 정원을 잘 관리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다.
18.본문 6절은 말한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도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함을 베푸셔서,우리가 복수심과 분노에 잡혀 사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그런 부분은 직접 감당하신다는 것이다. 로마서 12:19을 읽겠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한다. 19.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 우리 마음 속의 불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 되며, 이제 불타던 자리가 찬양과 즐거움의 자리로 대체된다. 마음 속에 근심과 질투와 분노와 억울함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내 안에 품고 가보았자 병만 생기고 영성만 구멍난다. 20.다윗 스스로도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분노가 마음 속에 있었지만, 심판자는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맡겼을 때, 오히려 자유함과 평안함을 누리게 되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자기는 그렇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평생 정죄하고 심판하는 마음을 품고 산다. 21.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누군가가 나에게 부당하게 했다고 주장하고 억울해하던 사람들이 미워하면서 자기가 욕하는 이들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선택을 할 자유가 있다. 평생 감정대로 살면서 분노하고 욕하고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과 과거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심판을 신뢰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16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22.그러면서 요구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서워서 피한다고 하기 보다는 주권을 드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하나님께 주권을 드리는 상태에 있는 사람은 똑 같은 성경을 보고 똑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이 그 심령에 무겁고 충만하게 가득 차게 된다. 즉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23.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대인 관계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나 화나는 일도 생기기 마련인데, 그러할 때, 물론 말을 잘못 한 사람도 책임이 있으나, 결국 시험에 빠지지 않고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지를 체크해야 한다. /한편, 다윗은 남들에게서부터 생긴 상한 감정도 보았지만, 자신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떳떳하지 못한 죄를 저지른 사람인 것을 인정한다. 24.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하심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재량을 마음껏 활용해서 사람들에게 최대 형량을 무자비하게 쏟아내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인자와 용서를 베푸시는 분임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25.시편 89:14-15을 읽겠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하심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우리가 인생의 하루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소리내어 찬양할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 앞에 복을 쌓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선을 쌓으며 사는 삶의 큰 유익이 우리의 죄악을 말끔하게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26.우리가 하나님께 선한 찬양을 할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반대로 우리가 불평만 쏟고 하나님을 불신한다면 어느새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리가 벌어지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마치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죄를 멀리 옮기셨고,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이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이 여기신다고 한다.
27.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기질을 잘 알고 계신다. 우리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우며 질투하고 상대를 깎아내리고 남들 앞에서 우쭐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신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장례에 참석한 것은 이제 신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큰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28.큰 아버지는 교사였고 믿음은 없었다. 술을 좋아해서 같이 술 마시기 좋아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다들 50대에 세상을 떠났고, 큰 아버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60살에 세상을 떠났다. 나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형을 전도하기 위해서 애를 썼고, 막내 동생이 원하니까 그런다고 했는지, 아니면 진짜 믿음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아버지는 기도원에도 가 있었고 어떻게든 살려고 애를 쓰다 반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29.그리고 그 추운 겨울에 2미터도 안되는 땅에 묻히는 것을 보면서 18살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속으로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살려고 별의 별 치료를 다 받았는데도 결국은 작은 땅 밖에 얻지 못한 것이다. 30.//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경험한 다윗은 15-16에 이렇게 고백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고 한계가 있는 인생과 대비되는 것이 바로 다음절들에 나타나는데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17-18)고 한다. 31.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고, 솔직히 헛되고 무상하기까지 하지만, 그러한 인생을 영원까지 값어치 있게 하고 의미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아까 처음에 다윗은 자신 안의 다양한 인격들이 모두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는데, 이제 그 찬양의 마음은 자기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들이 올려야 하는 것으로 향하게 된다. 32.그래서 22절을 보면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한다. 바로 다음 시편인 104:33-34를 연결해서 읽는 것이 좋겠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라,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라” / 33.인생의 분노와 억울함이 해소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더 사면 된다. 하나님과의 거리를 벌인 채, 자기 혼자 부정적인 감정을 품어봤자, 자기 속만 썩고 병든다. 다윗도 중간중간에 마음 상하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 또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하심이 없으면 온전히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4.그래서 자기가 남들을 정죄하고 심판하려는 미숙한 모습을 벗어나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고정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알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겸손하게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나 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기 주장에 빠져 있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좋다. 35.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를 바위에 새기는 것보다 더 깊게 영원에 새겨지게 한다. 바람같이 지나가고 들꽃같이 사라지는 인생이지만,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남는 지혜롭고 의미 있는 인생의 소유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우리를 누구보다더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을 올리는 가운데 영원까지 지속되는 축복 된 영생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