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1-09-29 17:00
생명의료 윤리, 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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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성일
조회 : 302  

1.서 론

 

    오늘날 우리는 현대사회의 놀라운 발달과 변화로 인하여 기존의 문화와 윤리적 세계관이 새로운 문화와 윤리관과 충돌하는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 이 속에서 어느 사회나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에게는 윤리적인 지침이 요청되는데 우리가 발 담그고 있는 종교계는 윤리적 지침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올바른 의식을 형성시킬 때 그 역할에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면 기존의 윤리로 판단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고 그렇다고 전혀 파격적인 시각으로 결정하기에는 두려운 점이 많은 문제들이 산재함을 보게된다.

 

   그런데 기본으로 들어가서 윤리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하고 질문을 한다면 대답하기를 인간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게 되다보면 거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것들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윤리의 발생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윤리는 실제적인 이러한 기능이외에도 명시적이든 그렇지 않던 간에 사회구성원들간의 기본적인 공통분모를 형성함으로써 사회통합과 질서의 기능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윤리는 왜 존재하는가?”하고 다시 묻는다면 윤리는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윤리가 인간의 발전과 행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기 보다는 통제를 가하고 획일적인 압력을 가하는 모습으로 인식되어왔고 또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였음을 보게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개인들의 갈등을 철저히 묵살하고 간과하였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렇게 윤리가 그 사회를 올바로 읽고 생명력 있게 제시되지 못할 때 그것은 또한 하나의 잔인한 폭력의 가면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현시대에 우리가 시대를 먼저 읽고 거기에 맞춘 적절하고 타당한 설명과 가치기준을 제시하여 준다면 지금까지 윤리라는 이름아래 자행되어온 갖가지 폭력과 무지의 과오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시대를 올바로 읽지 못하고 자행되는 윤리의 힘은 때로는 정말 비윤리적일 수 있다. 물론 윤리적인 기본을 충실히 따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는 시대를 읽고 이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윤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스스로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노력이 시대의 흐름에 너무나 부응하여 중심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윤리의 기본정신인 인간존중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뿌리는 지키면서 다양한 시대적 변화에 맞춘 열매를 맺어야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 논문은 윤리적인 결정력이 가장 긴급하면서도 중요하게 요청되는 생명 의료 윤리의 문제들에 대해서 접근하고자 한다. 사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사람들의 무지와 몰이해로 인해 파생되는 많은 문제가 이 분야에 있는 만큼 먼저 지식의 폭을 넓히고 그 안에서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방향을 정해나가야 할 것이다.

 

 

 

2.본 론

 

1) 생명의료 윤리

 

  세계 속의 여러 윤리 문제들은 사실 어떠한 것들은 과거로부터 계속 질문되어진 문제이다 예를 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불평등, 불공정한 분배, 정치적 억압 같은 것은 인류의 역사와 그 축을 같이하여 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문제가 있으니 이것이 생명의료 윤리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과학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산물인 동시에 윤리적으로 가장 민감한 안건인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인데다 오늘날 여기에 관한 사회 속의 윤리적인 판단기준의 적절한 제시가 부재한 고로 많은 사람들이 뜻밖의 고민에 싸이게되는 모습을 보게된다. 생명의료 윤리는 과학과 윤리가 서로의 영역에 대하여 팽팽한 긴장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에 오히려 더욱더 정확한 정보와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생명의료 윤리학은 응용윤리학(applied ethics)의 핵심분야로서 의료활동 및 생명에 대한 연구와 관련되어 파생되는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주제의 특성상 학문간의 공조가 필요하며 따라서 철학자와 의료 및 법률 전문가, 신학자, 그리고 과학자와의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하나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현재에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된 생명의료윤리는 50년대 말에서 60년대에 이르러 고조를 이룬 사회운동 및 월남전 발발이 철학자들을 급변하는 사회에서, 그들의 역할을 재고케 하는 계기의 상황 속에서, 축적된 생명공학 및 의학의 지식과 그에 따른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생명의료윤리학의 현 주소를 예고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며 이에 따른 복잡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윤리적인 문제들이 파생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들은 생명의료 윤리학의 이론적인 체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론과 개념들을 시험하고 예증하는 방식으로도 그 중요성이 결코 간과될 수 없었다.1)

 

   그런데 주지해야할 것은 오늘의 세계에서는 특수한 가치체계의 중심이 사라지고 윤리적 상대성에서 비롯되는 윤리적 다양성의 현실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과거의 강요적이며 억압적인 전통적 질서의 개념을 극복하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편적인 것으로 수용하는 인간해방의 과정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속화된 세계에서 출현하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는 윤리적 가치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수용하는 대신 현대사회를 구성하고 지배하는 힘의 논리에 복속되는 데에서 일어나는 위험에 있다. 오늘의 세계도처에서는 정치적 이익, 경제적 이익의 논리가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을 유린하고 있다. 그런데 의학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의 원리들을 이용하고 개발하려는 주체는 정치집단이거나 경제집단이 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 의료윤리에 있어서 윤리적 판단과 책임의 문제가 쉽게 무시되거나 간과 될 수 있는 실정이다. 현대 사회 속에 출현하고 있는 같은 권력집단들은 개인 윤리적 숙고의 구조를 뛰어넘어 윤리적 행위의 직접적인 책임성보다 보이지 않는 사회의 유기적 구조를 통하여 막대한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힘의 논리는 집단의 이기성으로, 혹은 권력의 보존과 확대의 형태로서 현대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영향아래 전개되고 있는 문제들 중의 하나가 생명공학, 유전공학과 같은 생명의료 윤리학의 주제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히포크라테스 선언이 담고있는 생명에 대한 휴머니즘적 의무론에 근거한 높은 윤리적 이상은 퇴색하고 다양한 차별과 편견과 인간조작의 현실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2)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생명의료윤리의 문제들이 도전되어지는지 알아보자

 

 

 

2) 안락사

 

   안락사(euthanasia)의 어원적 의미를 찾아보자면 ‘수월한 죽음’(an easy death)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치유 될 수 없는 질병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안락사는 “한사람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위 또는 무위(無為)에 의해 그 사람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야기하는 것”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안락 살해(mercy - killing)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고통을 끝내기 위하여 신중하고 특별한 효과를 내도록 약을 사용하여 빨리 죽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행위가 안락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반드시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 이여야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3) 그러므로 설령 약물 등을 이용해 한 사람을 아무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더라도 그 죽임이 그 사람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를 들어 그것이 가족의 이익이나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었다면 정의 상 안락사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안락사는 의사가 말기 환자에게 진통제를 투여하는 행위와 구별되어야한다.

 

   의사들은 말기 환자들에게 충분한 양의 진통제를 투여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자들이 진통제 때문에 죽게 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경우 안락사를 행한 것으로 간주되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걱정한다. 하지만 의사가 말기 환자에게 진통제를 투여하는 행위는 안락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의사가 결코 환자의 죽음을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윤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 인격체의 죽음을 가져오기 위해 치사량의 진통제를 투여하는 행위는 비록 그렇게 하는 것이 환자를 쇠약하게 만들어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할지는 모른다는 점을 예견하기에 환자의 통증을 완화시키려는 의도로 수회분량의 진통제를 투여하는 행위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4)

 

   과거 유교적 사고관에 있던 사람들은 안락사를 극렬히 반대하였으나 오늘날 수명이 길어지고 죽음에 이르는 병상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리고 고통을 줄이고 편안히 보내드리는 것이 더욱더 인간적이라는 사고방식이 퍼지면서 안락사는 그 힘을 얻어가고 있다. 어떤이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어떻게 인간이 그의 죽음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가? 하고 반박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죽기를 바라는가하는 반론도 제기된다.

 

 

 

3) 장기이식

 

   장기이식은 크게 뇌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가 하면 불법 장기매매와 그 부작용의 문제들이 있다. 이 문제는 장기공급자의 통전성에 관계된 것이다. 로마 천주교는 장기이식을 전체성의 원칙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 문제는 장기 공급자가 자기와 같이 신성성과 존엄성을 갖는 또 다른 인간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존의 의미와 연결시킨다면 장기이식은 공생의 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뇌사판정은 먼저 환자가 원인 질환이 확실하고 치료될 가능성이 없는 뇌병변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깊은 혼수상태로써 자발 호흡이 없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호흡을 유지하고 있어야한다.

 

   뇌사는 교통사고, 급성뇌출혈, 추락사고, 뇌종양, 질식사, 총기사고 등의 사유로 발생 할 수 있으며 식물인간과는 엄격히 구별된다. 뇌사는 뇌가 손상을 입어 의식을 잃게되면 혼수상태에 빠져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게 되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여야한다. 맥박, 체온, 혈압은 일시적 유지가 가능하나 어떠한 치료나 노력을 하여도 도저히 회복 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상태가 되어 수일 내지 길어야 2주 이내에 심장정지가 초래되어 자연사하게 되는 과정으로 많은 나라에서 이미 뇌사가 심장사와 함께 죽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뇌사자의 장기이식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공여 되느냐에 따라서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뇌사자중에서도 1%만이 장기를 공여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희소성 속에서 장기이식 대상자는 사회 가치체계의 맥락 안에서 선택되어져야한다. 즉 현재까지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많이 공헌을 하였거나 앞으로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도록 선택하여야한다. 다시 한번 뇌사문제에 있어서는 의료 기술적 해결책은 의료윤리문제를 해결하는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윤리적 처방을 할 수는 없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뇌사 인정을 검토함에 있어서 사회통념과 실정법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성에 기초를 둔 윤리적 판단이다.

 

   왜냐하면 사회통념은 역사적 우연성, 지역적 특수성, 아직 발달되지 않은 과학적 지식, 편견 등에 지나치게 좌우되고 실정법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에 있어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인정된다면 뇌사판정을 합법화해서 더욱 많은 생명이 현대의료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장기의 원활한 공급을 위하여 뇌사판정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분배정의의 측면에서 고려되어져야한다. 고통과 혜택이 적절하게 분배되듯이 장기의 수요와 공급을 결정 지워주는 원칙을 확립하여야한다. 어떤 이는 장기의 공개념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환자 또는 그 가족의 동의 없이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감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동의를 할 수 있도록 의사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동의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해야한다.5)

 

 

 

4) 인공유산

 

   영어단어 ‘abortion’은 인공유산을 비롯한 유산, 조산의 모든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낙태, 임신중절, 인공유산 등의 어휘가 쓰이고 있다. ‘낙태’ 는 천주교를 비롯한 개신교계, 형법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낙태라는 어휘를 사용함에 있어서 공통점은 이를 태아에 대한 불의한 살해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다분히 규범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그 행위에 대한 여러 측면의 이해보다는 ‘죄’로써의 이미지를 가지게 한다.6) 천주교는 생명이 최고선이라는 윤리적 관점에서 인공유산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 이러한 입장은 결혼과 성과 생명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천주교가 규정하는 인간의 성에대한 의미와 목적은 인간의 성의 두 측면인 ‘연합적인 기능과 생식적인 기능’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 ‘영원한 결합’이 되어야 하므로 모든 결혼 생활은 ‘생명전달’의 방향으로 개방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그 존재의 첫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할 존재라는 점이다. 즉 인간의 생명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새로운 인간생명이 시작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죄 없는 생명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페미니스트인 B. W. Harrison은 선택(pro-choice)에 대한 여성의 권한에 대한 윤리적 근거가 충분히 평가되고 인식되지 않은 상태는 윤리적 결정자로서의 여성의 권한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공유산의 문제는 생명의 존엄성과 여성이 삶의 자유를 누릴 권리 속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이 문제는 세계적으로도 그리고 일반적으로도 생명의료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며 정치가들의 정책적인 방향의 제시가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사후피임약 사용이 파장을 일으키는데 먼저 미국에서는 미국식품 의약품 안전청(FDA)이 인공유산용 알약 ‘마이프 프리스톤’의 판매를 2000년 9월에 허용하였다. 마이프 프리스톤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 한 후에도 인공유산을 유발하는 것으로 임신 7주 이내에 복용하였을 경우 효과는 95% 안팎이다. 유럽에서 RU-486으로 잘 알려진 이 약은 지난 10년간 유럽여성들에게 공공연히 사용되어왔다. 유럽에서는 임신중절 여성의 50%가 병원에서 받는 낙태수술보다 몸에 충격을 덜 주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이 약을 선택했다. 역시 인공적인 조절력인 피임법의 개발은 여성을 출산의 짐에서 해방시켜주고 활발한 사회활동의 밑바탕이 되었다. 20세기초 만해도 여성들은 평균 4명 이상에 이르는 자녀수로 인해 출산 사망률이 높은데다 출산 터울이 짧아 덩달아 유아 사망률도 높았다. 그러나 피임법이 보급되면서 출산은 현저히 감소되었고 유아 사망률도 감소하였다.7) 이렇게 여성이 생명탄생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느덧 인공유산에 대해서도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하는 배경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성적인 방종과 연결되었으며 수많은 태아가 때로는 일말의 죄의식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생명경시풍조에도 일조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인공유산을 하나의 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근거는 1965년 제 2차 바티칸 회의 이후 고착된 교리법 때문이다. 이것을 종교성의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사상적 근거로서 영혼주입 시기이론과 생명의 시작이론을 들 수 있다. 이 이론들은 중세 시대에 마련되었는데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정 순간에 영혼이 주입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태아를 죽이는 행위는 살인이 될 수 도 있고 또는 면죄 받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었다. 현재 천주교는 산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의도로만 행해지는 간접낙태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8) 그러나 공리주의의 관점에 있어서 인공유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는 인공유산이 이미 태어난 자들에 대한 결과만을 고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태아에 대한 결과도 역시 고려해야 하는가 이다. 특히 인공유산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결과를 평가함에 있어 태아가 계속 살아 있음으로써 그에게 생겨날 결과를 포함시켜야 하는지? 또 인공유산으로 인해서 생기는 결과를 평가함에 있어 태아가 생존하지 못함으로써 그에게 생겨날 어떤 이해득실을 고려해야 하는지? 라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출생의 득실에 대하여 상반된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인공유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함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렇다면 보스니아 내전 때 수많은 여자들이 적군에게 강간당하여 생긴 아이들이 자연 출생한다면 그 아이나 그 부모의 삶이 얼마나 저주스러울 것인가를 생각할 때, 강간에 의한 임신까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므로 거스를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한 반박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모든 여성의 보편적인 고민인 출산과 인공유산의 문제는 개인들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의 시스템적인 조력이 필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인공유산을 거부하지만 강간이나 근친상간 같은 상황이 설득력을 가질 때 인정되어야하며 이것은 산모의 자존심과 인격을 존중해주는 선에서의 윤리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인공유산에 대한 윤리적 입장은 극단적인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 모두 바람직하지 못하며 상황의 이해 속에서 어떤 것이 보다 더 나은 가치의 실현 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천주교의 인공유산 반대입장은 실제적 생명에 대한 존중보다는 그들의 원칙과 신념에 집착하는 나머지 상황을 고려하는 진지함이 결핍되어 있다. 태아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함께 산모와 가족들의 생존권과 상황들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태아를 불완전한 인간으로 간주하여 인공유산을 옹호하는 태도는 기존의 사회구성원들의 이기적인 가치관과 편리성에 의해 고귀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인공유산에 대한 옳고 그름의 극단적인 논쟁보다는 현대사회의 무분별한 인공유산을 최소한으로 감소시키고 산모와 아기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5) 생명복제

 

   미국의 리사와 잭이라는 부부는 딸 몰리(6세)의 유전병 치료를 위해 유전자 검사를 통한 새로운 아이를 낳았다. 이것은 누나의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동생이 유전적 선택 조작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이다.9) 이러한 유전자 조작을 통한 문제는 과학적인 기술의 차원을 떠나서 그것이 미치는 사회에 대한 강한 파급효과 때문에 최근 윤리적인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현재도 유전공학의 발달로 우리는 적지 않은 부분이 이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들을 접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 종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합성하여 필요한 생물체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가까운 미래에 인공장기 마켓의 등장을 가능케 할 수도 있으며 장기뿐만 아니라 인간자체를 원하는 수준과 규격에 맞추어 생산해 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전자 조작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생활은 코르페니쿠스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일까?10)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다른 생명을 복제해 낸다는 것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세시대에 달나라 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여겨졌었다. 하지만 놀라운 유전공학의 발달은 이미 기술적으로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며 곧 생활주변의 현실로 다가올 사안이다. 생명복제의 문제는 1993년 조지 워싱턴 대학의 제리 홀(Jerry Hall)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배아를 복제하면서 대두되었다. 그 당시에 일어난 논쟁이 1997년에 접어들면서 돌리(Dolly)의 탄생으로 더욱 가속화되었고 인간복제로까지 나아가는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그리고 99년 2월에는 인간복제보다 어렵다는 소의 복제도 국내에서 성공했다. 인간 복제의 문제는 이제 과학의 차원을 벗어나 윤리의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 기구인 유네스코(UNESCO)는 1997년 11월7일 인간복제 금지를 위한 강령인 ‘인간게놈과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을 제정하였다. 그것의 핵심은 유전자를 포함한 총체적 인간에 대한 인권선언이다. 동시에 이 선언은 게놈연구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며 또한 파생되는 경제적 문제를 상업주의가 선점 내지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도 강하게 담고 있다.

 

   현재 일반인들도 주지하는 게놈 프로젝트가 이행되는 현시점에서 생명복제에 대한 옹호론과 반대론의 공방이 뜨겁다 생명복제의 옹호론 자들이 주장하는 복제의 타당성은 실용적인 관점인바 첫째는 생물학적 불사불멸이며 둘째는 유전병을 막아주며 셋째는 개선된 장기이식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법적, 윤리, 신학적인 입장에서 인간복제를 거부한다. 첫째는 과학적으로도 이 문제는 많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며 이것은 가령 58세인 내가 20세인 복제된 ‘나’의 젊은 몸에 ‘목 바꿔치기’ 수술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11) 둘째 복제를 통해 만들어진 사람들의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하며 셋째 윤리적, 신학적 문제로 현재의 인간사회는 인간의 탄생, 생애, 죽음에 관련된 숭고함과 외경스러움이 만들어 내는 인간끼리의 사랑과 인권존중을 근거로 성립되어 있다. 그러나 부모간의 성적인 결합에 의해 탄생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복제인간들은 부모의 가치를 위협하고 결혼을 통한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위협할 것이다. 만일 인간이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고 공장이나 실험실에서 무성번식으로 제조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인간사회를 받치고 있는 모든 개념은 일시에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학적으로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부분에 침해하는 문제와 복제된 인간도 과연 존중받을 영혼의 소유자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기본적인 조직에 대한 부정적 파장을 예견하는 각국 정부는 생명복제에 관한 윤리적 지침을 정책적으로 연 구하고 입법화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직면해서 기독교의 신학과 윤리적 입장들을 성공회대 손규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 그 자체는 인간들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조작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아는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자기규정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의 자아는 인간의 자기규정의 가능성 들 밖에 놓여있는 규정된 그리고 대화적 존재이다. 둘째,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서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개체로서 그 존엄성을 가진다. 인간존재의 존엄성의 기초가 되고 있는 통일성은 같은 인간들에게 나올 때 신의 형상으로서의 개체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된다. 셋째 인간은 자신만의 독특한 개체성을 통해서 타인의 개체성과 같이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의 공동체성은 이러한 개체들의 다양한 특성들을 통해서 성립된다. 동일한 다수의 인간들 사이에서는 공동체성이 성립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성품을 가질 수 없다. 이렇듯 종교계 전반에 걸쳐서 인간 복제는 심하게는 인간의 종말을 불러오는 것으로 그리고 좀 관용적으로는 사회적 통제하에 조정되어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어쨋든 종교가 인간복제를 보는 시각은 긍정적이지 않다. 인간복제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면에서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고 종교적이나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인간복제에 대하여 미국 보스턴대의 윤리신학자인 라이자 사우힐 케이힐은 뉴스위크지 (1997.3.12)에서 말하기를 “인간복제가 근원적으로 악한행위라는 확신을 아직 가질 수 없다”라고 했다. 일란성 쌍둥이를 둔 케이힐은 복제를 했다고 해서 본체와 복제체와의 존엄성이 침범되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다른 윤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케이힐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인체와 유전자의 상품화이다. 특히 아름다운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자녀를 갖기 원하는 돈 많은 사람이 우량의 DNA를 구입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입장이다.

 

   만약 아무런 규제가 없이 인간복제가 진행된다면 이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 인간의 기본적 질서를 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다만 복제기술이 엄격한 통제하에 선용되어진다면 여러 가지 질병을 고치는데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줄이는 방법으로 이것이 사용되어지는 것은 신중하게 대처해야한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그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돕는 방법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고 우주 평화를 깨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환자의 죽음에 이르면 주변 사람들은 큰 슬픔을 겪게 되지만 그런 슬픔을 이기며 살아야 하는 것도 자연의 법칙인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12) 생명복제에 관해 개체탄생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복제는 인간존엄의 핵심인 인간의 유일한 가치, 개성의 가치를 침해하는 행위로 반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법 정신에도 위배되는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인간 배아 복제를 제외한 여타의 연구 치료목적의 배아 실험은 엄격한 심의 절차에 의해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선 등록된 연구진이나 의료진, 기증자들에게 실험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서 표준적 방법에 따라 시험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독립된 윤리위원회로부터 엄격한 심사와 승인을 거쳐 행해야 할 것이며 이 경우도 다른 방법으로 실험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최소한으로 행해야 하며 가능한 경우 사전에 동물실험을 거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 인간복제로 이어질 수 있는 관련기술에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동물의 경우도 가능한 한 한 종의 다양성과 보존목적, 그리고 의학연구 치료목적의 경우만 복제를 허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래 함께 해온 ‘불’ 은 잘 사용하면 많은 편의를 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인류를 멸망시킬 무서운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생명복제도 이러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복제만큼은 나의 만족을 위해 다른 생명의 존엄과 권리를 무시하고 수단화하는 비윤리적인 결과를 낳게 할 것임으로 조속한 세계적인 합의 및 일반적인 홍보가 요청되는 문제이다.

 

 

 

 

 

3. 결론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충실한 원칙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겠지만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단순히 흑백논리와 사고에 의해서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과 모든 정황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같이 고려되어야 올바르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 다룬 생명의료 윤리의 문제들은 사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명백하게 나뉘어지는 문제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제들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또한 잘못된 지침을 줄 소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윤리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교회가 이 문제들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고 또한 교육이 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사실 수많은 교인들이 인공유산을 하고 그 문제로 고민하거나 갈등하는데 목회자와 상담하는 사람은 없고 또 교회에서는 미혼부부들을 위한 교육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독교윤리는 이 시대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각 교단, 각 목회자 개인과의 현격한 의견 차가 있음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천주교처럼 기준 제정을 전체적으로 획일화시키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절대화시키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생명의료 윤리의 논쟁들은 앞으로도 계속 전개 될 것이고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의 패턴을 바꿀 큰 영향력을 갖춘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교회는 생명의료의 문제를 원칙적인 틀에 박힌 답변으로 무성의하게 대하지 말고 좀더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를 통하여 삶 속에 실제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기준인 윤리는 잘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임과 동시에 좋고 생동력 있는 윤리관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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