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1-09-30 11:35
선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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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성일
조회 : 347  

                                    선교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부분 인용


제 1 장
선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

요즘 많은 교회들이 선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선교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성경적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도 와는 다르게 선교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교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가 무엇인지부터 올바로 알아야 하며 왜 선교를 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런 후에 선교의 방법이나 전략 등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선교에 대한 개념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가 선교”라는 선 교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따라서 “선교 란 무엇 인가 ? ”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목차로

Ⅰ선교란 무엇인가 ?

선교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이야기 하기 전에 선교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 하였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선교”라는 용어에 관하여

성경에는 선교에 관한 내용이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선교”라는 용어는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이 용어는 중세의 프란시스칸 종단(Franciscan Order)에 속한 수도사들을 ‘missionary’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missionary’라는 단어는 라틴어(missio)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도’즉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역사 속에 서 최초의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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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교 개념

지금까지 교회들은 ‘무엇이 과연 선교인가’ 라는 선교 본질적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해왔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성경적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선교에 대한 정의는 약간씩 다르다.

 

죤스토트 (성공회 목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세계 속으로 보내게 하시는 모든 일을 포괄하는 말이 선교”라 말하며 이는 복음화와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 는 것이라고 하였다. 교회 성장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도널드 맥가브란 박사는 선교란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지상명령이란 地上命令이 아니고 至上命令이다. 즉 더 이상 이를 때가 없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명령이라는 것이다. 이 명령은 마태복음 28:19-20의 명령이다.

 

피터 바이엘 하우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변인이 되어 영원한 멸망에 처한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을 증거하고 제시하여 하나님과 화해케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선교”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개념과는 달리 에큐메니칼 선교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선교 신학의 핵심인 “하나님의 선교사상 (missio dei)” 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보이 지 아니하는 모든 활동은 교회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자의적이고 주권 적인 뜻 안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이루어 나가시는 모든 활동이 세상 안에서 전 개될 때 여기서 선교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본래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타락 후 멸망에 처해질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미 예정하신 일을 말하는 것으로 성경적인 용어였으나 에큐메니칼이 이 용어를 비성경적 선교 개념으로 사용하는 변질을 가져오게 하였다.

* 요하네스 호켄다이크의 선교이론

1) 교회가 선교의 한 기능이다. (하나님-세상-교회)

2) 선교의 목적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대화의신학 등장)

변질된 하나님의 선교사상을 체계화 시킨 신학자는 요하네스 호켄 다이크이다. 그는 1938년 인도에서 열린 탐바람 세계 선교대회 이후에 교회 중심적인 선교의 사고방식을 논박하면서 “교회는 선교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는 선교의 중심은 교회가 아니고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교회-세상” 모 델의 선교신학을 비판하고“하나님-세상-교회”의 모델을 내세웠다. 이런 모델 속에서 그는 “선교가 교회의 한 기능”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의 한 기 능”이라고 말한다. 즉 세상은 하나님의 선교 안에 존재하며 교회는 세상의 일부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교개념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선교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도구가 교회이므로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이 선교라고 보게 되는 것 이다. 이렇게 되면 ‘선교’라는 용어가 너무 남용되어 쓰이게 된다. 이것에 대해 선교학자인 스티펀 닐(Stephen Neill)은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다.(if everything is mission, nothing is mission)”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1961년에 이르러서는 세계 교회 협의회(W.C.C. / 1948년 암스텔담에서 창립됨)가 뉴델리에서 자유주의의 신학적 바탕 위에 선교와 교회를 하나로 합병하였다.즉 국제 선교사 협의회(I.M.C)와 W.C.C.가 합병되면서 교회와 선교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똑 같은 실체의 두 다른 면이라는 논리로 발전된 것이다.

 

여기서 “교회가 곧 선교다”라는 에큐메니칼 선교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랄프 윈터 교수는 이러한 합병을 “세계 선교의 장례 식”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교회 없이 세상에 선교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를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더욱이 호켄 다이크는 “선교의 목적을 교회설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주장하면서 진정한 선교의 목적은 “이 땅 위에 평화(샬롬)를 가져오는데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를 위해 타종교화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대화의 신학(Theology of Dialo gue)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아메리카 카톨릭 대학의 호프만 (Hoffman) 교수는 “현대 선교는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통해 서로 교제하되 타종교인들이 자기 종교를 버리기를 원치 아니 할 때 기독교인들은 신사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좋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이 자기 종교에 더욱 충실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 중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신학적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비성경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거슬리는 위험성이 있으므로 철저히 배격해 야 한다.

 

우리가 어떤 선교개념을 갖느냐에 따라서 복음주의 선교를 하는가 아니면 에큐 메니칼 선교를 하는가 나뉘어지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큐메니칼 선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생각할 때 복음주의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바른 선교개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선교의 개념에 대하여 누가 말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의 근거를 들어 선교개념을 정리해 본다면 선교란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자들을 찾아(요6:39)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하여(요1:12) 교회를 통해(행1:8) 타 문화권의 모든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마28:19)’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선교의 보편적 개념은 자국이 아닌 타 문화권에 있는 불신자들 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가 지구촌을 형성한 가운데 있으므로 이런 생각 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한 국가 내에도 언어, 풍습, 문화, 인종 등이 다른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기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선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타국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은 ‘해외 선교’라고 말한다면 이는 ‘국내 선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동일 문화권의 동일 민족에게 복음 전하는 것도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를 국내에서 행할 경우 ‘국내 선교’라고 말하였다. 즉 직장선교, 군 선교, 학원선교 등 모든 분야에서 복음 전하는 것에 선교라는 용어를 사용해 온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스티펀 닐이 말한대로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동일 민족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국내선교’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 경우는 ‘국내 전도’라는 말로 구분 하여 사용함이 좋겠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를 구분하는 것이 혼동을 없애준다.

이러한 개념정립이 안되어 있는 교회는 직장선교, 군 선교, 학원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그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선교사라고 부르지 않는 모순을 않고 있다. 선교사는 해외로 나가 타국에서 사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국 내에서 타 문화권의 외국인들 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선교사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러나 선교기관에서는 이미 이를 인정하여 선교사로 파송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교의 흐름이 변화 되어 감에 따라 선교적 용어도 변화되고 그 개념도 바뀌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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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왜 선교 하는가 ?

이 물음은 1928년 예루살렘 선교대회의 주제였다. 왜 선교하는가 ?

우리는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한 대답을 한다는 것은 선교의 목적과 목표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 답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면 아래와 같다.

1. 선교는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핵심주제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선교는 신약시대에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세계 선교에 대한 메시지를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선교는 메시야가 오신 이후부터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3:15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은혜언약을 맺으며 메 시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때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창12:3에 이르러 아브라 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명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선교계획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겠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오시게 되는 메시야로 인하여 온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계획인 것이다. 이 계획을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하게 하시는 중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선포하게 하므로 선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땅끝의 모든 이방 족속에게까지 이루어져야 할 것을 증거하게 하신 것이다.

 

선교의 주인공이 되시는 그리스도(메시야)께서 성육신 하신 후로는 예수 님이 직접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 나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선포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마감하는 요한 계시록에 이르러서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한 환 상을 보는 중에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는” (계5:9, 7:9, 14:6) 환상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환상을 통해 모든 나라 모든 족속에게 반드시 구원의 복음이 증거될 것을 알려 주신 것이다. 비록 성경에 선교라는 용어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처럼 선교의 흐름이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3:15, 12:1-3, 와상17:2-24, 시47편, 67편, 이사야40장-50장, 램1:5-16, 겔3:1-11, 단6:24-28, 욜2:1-17, 욘1-4장, 마28:19-20, 막16:15, 죽24:46-47, 요20:21,행1:8,롬15:16,갈2:1-10, 계7:9)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한 것이라고 말한다.(요5:39)

 

따라서 성경 전체의 맥을 짚어 볼 때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겠으나 특히 예수님의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전체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대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초의 선교사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실지로 택함 받은 자들의 구속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하셨기 때문에 성경전체는 또한 선교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는 오순절 성령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가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약속하시면서 시 작되어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증거되었고 오늘에 이르러 수많은 선교사들을 온 세상에 보내시는 가운데 그 뜻을 이루고자 계속 진행하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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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교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이 명령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모두 기록해주고 있다. (마28:19-20, 막16:15, 죽24:47-48, 요20:21, 행1:8) 예수님은 이 명령을 승천하시기 전 제자 들에게 주었다. 사복음서 기자들이 그 명령의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였다. 특히 누가는 사도행전 1:8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 라”고 말하면서 선교사역을 위해서는 필히 성령을 통한 권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하여 성령을 보내 줄 것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행1:5) 이 말씀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 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기 위해 모였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였다. 그들은 모두 성령충만을 받았고 이로 인하여 복음증거의 소극적이었던 자들이 적극적인 자들로 바뀌었으며, 불 같은 성령을 받고 보니 뜨거워져서 복음을 전하 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들로 변하였다.

 

베드로가 많은 청중을 향하여 복음을 전할 때 천하각국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온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 전도설 교를 자기나라 말로 알아듣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3천명, 5천명이 일시에 회개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는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이 행할 수 있었던 능력은 성령충만을 받으면서 비롯된 것이다. 만일 오순 절에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능력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수님이 약속에 따라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온 자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사도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집에서 떡을 떼고 교제하기를 힘썼다. 이로 인하여 이상적인 예루살렘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최초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선교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 주셨고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탄생 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공동체로서 선교명령을 계속 이루어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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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교는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탄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선교명령을 이 루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다. 여기서 마태가 표현한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생각해보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 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 이 말씀을 17세기 영국의 리차드 박스터 (Richard Baxter) 와 W. 에임스 (William Ames) 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였다.

첫째로 ‘가라’는 명령은 타 문화권 이방 족속에게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 라는 선교 사역명령이다.

둘째로 ‘지키게 하라’는 동사는 (성도들을 잘 양육하여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하는 삶이 되도록 하라 / 나의 부가적 설명) 목회사역 명령이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볼 때 먼저 교회가 세워져야 그 다음에 목회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역이 선행하지 아니하면 목회 사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선교사역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에밀 부르너(Emile Brunner/칼빈의 개혁적 전통 속에서 자라 스위스 쮜리히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는 “불은 활활 탈 때 불이듯이 교회는 선교 할 때 비로소 교회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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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누가 선교 하는가 ?

<선교의 주체는 교회이다>

1. 교회가 선교단체와 함께 협력하며 선교한다.

선교 신학자인 랄프 윈터(Ralf Winter) 박사의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 선교는 선교단체를 통해서만 세계선교가 수행될 수 있다”

 

그의 견해는 교회를 통해서 선교가 수행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교단체가 주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 출발이 선교단체로가 아닌 교회 공동체로서 출발한 것이며 선교단체나 선교 운동이 없다고 해도 교회가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바르게 깨닫는다면 얼마든지 선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교는 선교단체보다는 교회가 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옳을 것 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교회의 탄생이 선교명령을 이루어가기 위한 성령 의 역사로 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단체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가 선교를 위해 모든 활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선교만을 위한 전문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다. 교회는 예배와 교육, 성도의 교제, 및 사회봉사, 구제활동 등 하나님의 자녀들로 선교 이외의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만을 위한 전문기구가 만들어져서 전문성을 갖고 구체적인 선교전략 등을 세워서 교회와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선교단체는 어디까지나 전문성을 띤 선교기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일관해야 한다. 선교단체에서 교회와 같은 기능을 갖고 움직이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선교단체 역시 전문성이 약화될 것이며 교회와 협력해야 할 선교기구가 마찰을 빚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교회에서 선교훈련을 전문적으로 시킬 수 없어서 어느 선교 단체에 젊은 청년들을 위탁하여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선교단체에서 선교 훈련 외에 나름대로 주일날 자체적으로 예배도 드리며 교회의 기능을 갖추어서 활동 하므로 위탁된 청년들이 본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그 선교단체에 소속 되어 모든 것을 함께한다면 그 후에 어느 교회가 그 선교 단체에 선교 헌신자들을 교육시켜 달라고 위탁 하겠는가 ? 그러므로 비록 선교단체가 전문성을 갖고 선교사를 파송 하고 관리하며 선교 정책을 갖고 선교 한다고 할지라도 그 단체에 속한 모든 구성원은 나름대로의 소속교회가 있어서 교회를 통하여 신앙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성도 개개인이 선교에 관한 도전을 받도록 하여 그 가운데 전적인 선교 헌신자들을 발굴한 후 선교 전문기구에 위탁 전문적인 훈련을 받도록 하는 상호협력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편 훈련된 선교 헌신자들은 교회가 협력할 선교단체와 함께 파송하여 교회는 후원(기도와 재정)을 전적으로 책임지며 나아가고 선교단체는 효율적인 선교를 위한 선교사 관리 및 선교정책 수립, 방향제시, 선교사 재훈련, 선교대회 를 통한 선교사 위로, 재충전, 현지에 맞는 선교정책 점검 및 변경 등 다양한 전문 적인 일들을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선교단체는 서로 잘 협력 해야 할 관계이지 우선순위를 따져야 할 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 서만 세계선교가 수행될 수 있다거나 혹은 선교단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란 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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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송된 선교사가 선교한다.

모든 성도가 선교지를 향하여 갈 수 없다. 그것은 선교지를 향하여 떠나는 자는 하나님이 특별히 부르시기 때문이다. 최초로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았던 바나바와 사울(바울)의 경우 성령이 그들을 따로 세우라 명하신 것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어떤 분들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하는가?

1) 선교사의 유형

목사 선교사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신학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은 뒤 선교의 소명을 받은대로 선교사로 헌신하는 경우이다. 선교의 소명을 받는 시기는 개인 마다 차이가 있다. 목사 선교사는 대부분 파송교회와 협력교회들의 후원을 통해 전적으로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일에만 전념한다. 이들을 통해서는 현지 사역자 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비롯하여 광범위하게 사역을 펼쳐 나갈 수 있다. 다만 목사 라는 신분 때문에 선교 제한 국가에서는 어려움이 많이 따르기도 한다.

평신도 선교사

과거에는 선교사는 모두 목사가 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교단 헌장에도 선교사는 “해외에서 사역하는 안수받은 목사”라고 되어 있었던 것 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목사가 되어야만 선교사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 다. 선교사로 파송된 경우는 아니라 할지라도 예루살렘 교회의 빌립 집사를 비롯 한 평신도들이 각지에 흩어져 선교를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중국이나 모슬렘 국가와 같은 창의적 접근 지역에는 평신도들이 전문인 사역자로 헌신하여 나가서 사역할 경우 유리한 점들이 매우 많다.

 

전문인 사역자란 특별한 전문직을 갖고 그것을 통해 선교지에서 일을 하며 자비량으로 선교하는 자를 말한다. 이들 의 단점은 신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 사역자들을 키우는 신학교 혹은 성경 학교 사역 등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며 제자훈련 정도는 소정의 훈련 을 받고 나간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전문직이 없는 평신도의 경우도 파송 을 받고 교회의 후원을 통해 선교지에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한국 교회의 이해부족으로 파송 교회와 협력교회를 찾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2) 선교사의 자격

선교사로 헌신했다고 무조건 선교사로 파송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로 인선되어서 파송 되기까지는 먼저 선교사가 갖추어야 할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어떤 자격조건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

분명한 선교사로서의 소명이 있는 자이어야 한다.

소명이 없이 선교사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선교지는 영적 전쟁을 치루는 곳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자 할 때 부딪히는 어려운 일들이 매우 많다. 그때 소명이 없는 자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어 선교를 중도에 포기 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나아가서는 그런 분들이 여러 모양의 문제들을 일으켜 다른 선교사들이 선교하는 것 조차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선교 사로서의 소명이 없을 경우는 선교사로 지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명이 있는 자가 선교사로 파송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사항이다.

 

어떻게 선교사로 부르심을 알 수 있는가 ? 이 물음에 대하여 선교소명을 깨닫는 여섯 단계를 말해본다면 아래 와 같다.

 

1단계 : 호기심의 단계

선교사의 편지, 신문의 기사, 토론회, 선교대회, 선교강좌 등을 통해 선교에 대한 호기심이 유발하는 단계이다.

2단계 : 관심의 단계

호기심을 갖게 된 선교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하는 단계이다.

3단계 : 이해의 단계

관심분야에 대한 자신의 자발적인 노력이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4단계 : 확신의 단계

이상하게 선교에 대한 말을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분야에 전념하고 싶어지는 단계이다.

5단계 : 신념의 단계

선교사가 되어야만 한다고 느껴지는 단계이다.

6단계 : 헌신의 단계

 

어떤 좌절이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선교사로 헌신 하겠 다고 결정하는 단계이다.

위와 같은 단계를 꼭 거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선교대회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헌신하게 된 것이 일생을 선교사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성령의 역사에 따라 개인마다 차이점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위와 같은 여섯 단계를 거치면서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순종과 결단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선교사는 현지에서 자기 마음대로 선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한 선교단체의 선교정책에 순종하여 사역을 펼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 말씀에 비춰보는 일이 없이 진행한다거나 자기 생각대로 일들을 진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에 맞추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면 안된다. 갈라디아서1:10 에 “내가 사람 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바울이 고백 했던 것처럼 먼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다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학문적 자격이 구비되어야 한다.

19세기만 해도 허드슨 테일러는 믿음선교(faith mission) 운동을 전개하면서 정규교육을 조금 밖에 받지 못한 사람들을 모집하여 그들로 하여금 효과적인 평신도 사역자가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성경교육을 제공하였다. 비록 세상 학문을 통해 어떤 학위를 소지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지적능력을 갖춘자가 되어야 선교 지의 언어를 습득하며 사역 중에 부딪히게 될 여러 분야의 제반 문제들을 잘 처리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 따라서 요즈음 모든 선교단체들에서는 대학 학력 이상의 수준을 갖춘 자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특별한 예외 규정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 은 비록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하였어도 그의 경력이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 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이 되면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목사 선교사는 신학교 이상을 졸업한 자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선교사이든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있으므로 성경교육을 제대로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 선교사의 경우 복음 주의 신학을 올바로 배웠는지 등의 검토가 필요하며, 평신도의 경우는 소정의 성경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자로서 복음증거나 제자훈련 정도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건강한 신체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다른 조건들이 다 갖추어졌다고 하여도 건강하지 못하면 선교지로 파송할 수 없다. 대부분 선교지는 환경이 열악하며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기후, 음식, 문화, 풍토, 현지인의 다른 의식구조 등 여러 분야에서 선교사가 적응하기에 쉽지 않아 충격을 받는 일들이 많다. 그러므로 건강한 선교사라도 이런 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건강하지 못할 경우는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선교지를 철수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 지망을 할 때에 반드시 건강 검진 기록카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선교사 훈련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선교훈련이 없이 선교지로 들어가는 자는 처음부터 문화충격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선교사들간에 혹은 현지인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로서 어떻게 현지상황들에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라 그릇 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통신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집에 있는 전화로 국제전화를 하면서 사역에 관계된 일들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암호를 써가며 둘러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지라도 본인이든 상대방이든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국제전화는 100% 도청 된다는 것을 안다면 보안이 요구되는 내용을 집에서 국제전화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선교훈련을 통해 미리 알게 되면 이런 어리 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선교훈련은 공동체 훈련과 선교지 연구, 영성 훈련, 비전 트립 등을 갖는다. 일반적인 선교훈련도 필요하지만 선교지 별 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것이 절실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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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누구에게 선교하는가 ?

<선교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자들이다.>

최초의 선교사이신 예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오셨다.(요6:37-39)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자들이 누구인가 ?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그들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하신 자들이다. (엡1:4-5) 이들이 누구인지,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믿지 않고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죽는가 ?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예정하신 자들 이라면 분명히 예수를 믿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택함 받은 자들이 아니 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택함을 받은 자들이 택함 받지 못한 자들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 말씀 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청함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 라” (마22:14)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천국에 대한 비유이므로 그 택함 받은 자들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하는 신부된 자들 곧 구원받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택함 받은 자들을 찾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보냄을 받고 오신 것 이다. 그러면 우리가 왜 모든 나라 모든 족속을 향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선교를 해야 하는가 ? 그것은 구원받을 택함 받은 자들이 온 땅에 흩어져 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소식을 듣는다고 할지라도 성령이 각자 에게 임할 때 에 비로소 예수를 영접하게 되는데 그 성령이 임하시는 시기가 각각 다르다.

 

따라서 한 두번 복음을 전해보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는 택함 받은 자가 아니라는 식의 판단을 하면 안된다. 택함 받은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다만 복음을 전했으나 끝까지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죽었을 경우 그는 택함 받은 자가 아니었구나 추측을 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복음을 듣는 자에게 언제 성령이 임하실런지는 알 수 없으므로 성령이 임하여 그가 예수를 영접하기까지 계속 복음을 전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고아의 아버지라고 일컫은 죠지 뮬러는 일평생 60년간 그의 친구에게 복음을 계속 전하였지만 끝까지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죠지뮬러가 죽은 뒤 장례식에서 하관예배를 드리는 중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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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선교의 자세

선교는 예수님의 명령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행하여 잃은 영혼을 찾는 것 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어떤 형식이나 거품이 있어서는 안된다. 즉 실제적인 열매 를 맺지 못하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선교를 바르게 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1. 보내는 선교사와 가는 선교사 모두 성령충만을 힘써야 한다.

 

파송교회나 협력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선교사를 선교지로 보내고 그와 함께 호흡을 같이 하면서 선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내는 선교사’라고 일컫 는다. 반면에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고 전문적인 선교훈련을 받은 뒤 교회와 선 교단체의 보냄을 받고 선교지로 나아가는 목사 혹은 평신도를 ‘가는 선교 사’라고 일컫는다. 선교는 성령의 사역이므로 선교하는 자가 성령충만 하지 못하 면 제대로 선교를 감당할 수 없다. 선교지로 가는 선교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 하기 위해서라도 성령충만을 힘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보내는 선교사인 교회가 성령충만 하지 못하면 선교비만 보내고 관심도 갖지 않으며 기도도 하지 않는 현상 들이 나타난다. 선교에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성령충만 하면 교회는 선교사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위해 기도편지를 자세히 살피며 선교지를 탐방하기 위한 단기선교의 기회를 갖고 선교사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를 살펴서 최선을 다해 지원하며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기관에서 선교사를 위한 기도와 선교계획을 갖고 실행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선교사가 사역하는 선교지가 어떤 곳인지를 지도를 통하여 알려주며 그 나라 사람들은 위해 기도하게 하고 선교사에게 절기 때를 통 해 편지를 쓰게 한다.)

 

이런 교회는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나올 경우 충분한 재충전을 가질 수 있 도록 휴식공간과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면서 위로와 새 힘을 얻게 하여준다.

2. 보내는 선교사는 가는 선교사와 동역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교회는 선교사를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역하는 것이다. 선교는 선교 사만을 통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보내는 선교사인 교회와 선교사 간의 긴밀 한 협조와 동역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다. 동역하는 자세로 선교하는 교회는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가시적인 열매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해서 후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등의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며 선교 현장의 기쁨 을 함께 나눔은 물론이고 어려움 또한 기도하는 가운데 선교사와 함께 나누며 책임지려고 할 것이다.

 

선교사는 수시로 선교 현장의 기도 제목들을 파송 교회에 알리고 파송 교회는 항상 선교지의 상황을 잘 파악 하여 함께 기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3. 선교사는 거품이 없는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보내는 선교사나 가는 선교사는 모두 선교 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선교 가 진행되도록 올바로 쓰임 받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선교가 진행 되는 모습을 보면 거품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실 예로 어떤 교회는 외형적으로 보이기 위해 한 명의 파송 선교사를 후원하기 보다는 외형적이고 양적인 것에 치중하여 여러 명의 협력 선교사를 후원하려고 한다. 선교를 함에 있어서 예수님 께로부터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와 같은 외식됨이 있어서는 안된다. 올바른 선교 를 위해서는 이런 거품이 완전히 빠져야 한다. 그러나 만일 동기가 순수한 가운데 한 명이라도 더 선교사를 협력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여러 협력 선교사를 후원 하 는 것이라면 그것은 감사한 일이다.

 

한편 선교사에게 있어서도 거품이 없는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도착한 후 2년까지는 언어연수와 현지 적응기간으로 여기며, 잘 정착 하고 문화를 익히는 것은 물론 현지 언어를 열심히 배우는 것이 곧 그 기간 의 사역이다. 그러나 연수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인 사역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선교사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초조함으로 인하여 인위적이고 편법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사역을 행하려고 한다. 또한 해가 거듭 될수록 사역이 확장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실과 다른 과장 된 보고를 하기도 한다.

 

선교사는 사역의 열매에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그대로 기도편지를 통하여 알려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서 기도를 요청 하는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선교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역의 열매는 선교사가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맺게 하시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을 만큼 선교사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고 있느 냐는 것이다.

 

만일 양육하고 있는 현지인 사역자가 단 한 명 밖에 없을지라도 그 한 명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믿고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면서 거쳐가게만 하는 것으로 양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마치 큰 사역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백 배 나은 것이다.

 

거품이 없는 진실함으로 선교하는 선교사에게는 하나님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열매들을 아름답게 맺을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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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보내는 선교사로서의 파송 교회 역할

선교는 교회가 하는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파송 교회가 선교 사와의 긴밀한 협력 하에 후원교회로서의 역할을 올바로 감당할 때에 선교 현장 에서의 아름다운 사역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 하여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한국 교회가 이제는 보다 성숙된 자세로 선교하기 위해서 파송 교회의 역할에 대해 재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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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교훈련

파송 교회 온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훈련을 지속한다. 세계적인 선교 지도자인 조동진 박사는 선교훈련의 개념을 성경적 기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 하며 아래와 같이 개념 정리를 하였다.

 

1)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선교의 근원이며 대 법전이며 모든 시대의 선교의 종합계획이고 대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2) 성경은 교회와 선교의 관계에 대한 법칙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세계 복음 화가 교회의 최고 최대의 목표이며 과업이라고 정의한다.

3) 성경에는 선교와 목사의 관계가 규정되어 있다. 세계 복음화에 있어서 본국 교회의 담임목사의 선교적 위치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4) 성경의 선교의 최고 지휘권을 성령의 권능에 두고 있다.

5) 성경은 선교를 일반적 교회사역과 세계 선교사역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사람을 따로 세우도록 교회에 명하셨다. 바울은 사도행전 전체와 그 이후의 사도들의 서신 전체를 통하여 선교의 표본원리를 제시하였다.

6) 성경은 세계선교의 궁극적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대망과 이를 위한 올바른 준비로 규정하고 있다.

7) 성경은 세계 선교를 위하여 헌신할 사람을 택하고 이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어서 쓰시는 하나님의 선교와 사람의 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8) 성경은 기도와 금식을 세계선교의 동기부여의 근원으로 삼았다.

9) 성경은 세계선교의 헌금과 재정원리를 분명하고 상세하게 가르치고 있다.

10) 성경은 세계선교에 있어서 나라들과 민족과 문화와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선교훈련 개념을 바로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 는 성도는 누구나 선교훈련에 임하여 올바른 선교를 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선교훈련을 할 것인가 ?

훈련은 교회의 모든 기관(당회, 선교위원회, 남녀 선교회, 순모임, 늘푸른 회, 청년회, 학생회, 유년주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 모든 공예배시와 기관 모임 때에 선교를 위해 기도하게 한다.

2. 선교 세미나, 선교 교육, 선교대회를 통하여 선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 도전과 비전을 받게 한다..

3. 단기선교를 통한 선교현장을 체험하게 한다.

4. 선교에 관한 도서를 읽거나 연극, 영화 등을 관람한 후 그룹토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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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송 선교사 인선

파송 교회와 선교사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파송 교회는 파송 할 선교 사를 선정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 신약시대에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 했던 안디옥 교회를 생각해보자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통하여 성도들이 흩어 졌을 때 안디옥에 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사람들로 인하여 예수를 믿게 된 헬라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어 모임이 형성되었다. 안디옥에 이방인 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 교회는 구브로 출신의 바나바를 파견하여 사실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이에 안디옥에 가게 된 바나바는 실지로 이 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있는 사실을 목도하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모든 사람에 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행11:23) 권면하면서 그 모임을 인도하게 되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이므로 큰 무리가 주께 더하자 그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찾아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와서 함께 1년 동안 큰 무리를 가르쳤다. 이로 인하여 제자된 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당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나바와 사울 외에 사울이 오기 전부터 이 교회의 직분자로 있었던 아프리카 사람인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 의 젖동생 마나엔이었다. 이들이 주를 섬겨 기도할 때 성령이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는다.(행13:1-3) 여러 지도자 들 중에 왜 그들만을 따로 세우라고 하는가 ?

 

여기서 파송 교회가 선교사를 선정할 때의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a. 파송 할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할 것

b.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것

c. 선교사 소명을 확실히 받은 자를 세울 것

d. 선교사로 준비된 자를 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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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비 선교사의 파송 준비를 위한 협력

파송 전에 교회가 예비 선교사를 위하여 협력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

 

1) 선교 훈련원을 통하여 선교사 훈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훈련비용 등을 교회에서 부담한다.)

2) 가족 모두의 건강검진을 받게 한다.

3) 최소 파송 1-2년 전부터 파송 교회 모든 성도들과의 친숙한 관계가 되도록 교회에서 배려해준다.

4) 선교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등이 필요할 시는 그것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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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송 선교사를 위한 노후대책

선교사와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에 모든 시간과 물질을 사용한다. 그들은 자신을 위한 노후 대책을 스스로 준비하기가 어렵다. 파송 교회가 선교사들에게 노후를 위한 대책 을 마련해 줌으로써 선교사로 하여금 생활의 염려를 덜고 선교 사역에 전심전력 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선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파송 교회가 한 선교사를 10년 이상 후원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파송 교회가 선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족과 선교의 분명한 동기와 목적, 목표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 나는 현상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도, 쓰러지지 않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나무의 사명을 감당한다. 파송 교회가 그 역할을 올바로 감당 할 때에 뿌리깊은 나무와 같은 선교사가 이 땅에 많이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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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바람직한 단기선교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들마다 단기 선교 팀을 구성하여 선교지를 다녀오는 일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마다 단기선교를 하고자 할 때 사전에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없이 진행한다면 좋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선교의 분명 한 목적을 설정하고 현지 선교사와의 긴밀한 협조 하에 계획성 있는 단기 선교를 실 행해야 할 것이다.

1. 단기 선교의 목적

단기 선교를 왜 하려고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곧 단기 선교의 목적 이 된다.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목적이 약간씩 다를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이야기 할 수 있다.

1) 선교 현장 체험을 갖게 한다.

선교 현장의 체험은 선교 현지의 바른 이해를 돕는 길이다. 백문이 불여 일견 (百问不如一看)” 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교현장에 가보지 않고 선교사의 기도 편지와 보고서를 통해서 선교지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현장 체험이 가져다 주는 유익은 첫째로 선교지의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잠시나마 접해 보면 서 선교사의 사역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둘째로 보내는 선교사와 현지 선교사 간에 기도의 동역이 잘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 셋째로 교회와 현지 선교사의 원활한 협력이 이루어져 선교 사역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게 한다.

2) 선교의 도전 및 비전을 받게 한다.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먼저 기도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준비가 없이 떠나게 되면 단기 선교가 자칫 관광 차원의 여행에 그치게 될 수도 있다. 선교 여행에서 영적 차원의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을 놓치고 ‘그저 좋다’ 혹은 ‘그저 그렇다’ 정도의 감정만 갖고 돌아온다면 선교 여행의 참된 의미가 퇴색 될 것이다. 영혼구원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받고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단기선교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된 가운데서 떠난 단기 선교 팀은 몇 가지 루트를 통해 도전과 비전을 얻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현지 선교사와의 대화의 시간을 통하여

선교사가 귀국 해서 선교보고 하는 것이나 기도편지를 통하여 현지소식을 듣는 것과 단기선교로 선교현지에 가서 현장이야기를 듣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장에서 선교이야기를 들을 때 더욱 쉽게 도전이 되며, 새로운 비전을 갖는 계기가 된다.

 

현지 선교사의 사역현장을 둘러 보면서

선교사가 사역하는 현장에 가서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과 그들과의 대화 및 사역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큰 도전을 받게 되며 성령이 역사하면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될 수 있다.

 

현지 사역에 직접 참여해 봄으로써

3) 현지 선교사의 사역에 힘을 실어준다.

다음과 같은 것을 통해 선교사의 사역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어떤 전문분야의 기술을 활용하므로

예로, 이발사, 미용사, 컴퓨터 전문가 혹은 그에 상당한 기술을 가진자, 의사, 약사, 교사 등이 자신의 전문분야의 기술을 활용하여 현지인들을 도와주고 선교사들과 자녀들을 도와줄 때 선교사는 새로운 힘을 얻고 더욱 열심히 사역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

 

선교사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채워주므로

선교사가 하는 사역 가운데 그를 도와서 일해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가령 문서번역, 자료정리, 선교사의 손길이 미쳐야 할 현지인들을 위한 각종 봉사 등의 일들을 하게 되면 선교사의 수고를 덜어주게 되는 것이며 선교사는 그만큼 시간활용을 다른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선교사의 자녀 교육을 통하여

열악한 선교지일수록 선교사는 자녀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는다. 특히 어린 나이에 선교지에 갔을 경우 한글 교육을 받을 기회가 희박하다. 그러므로 단기 선교 팀이 와서 짧은 기간이라도 한글 교육을 시켜준다거나 선교 사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므로 자녀들이 마음에 안정을 얻게만 해주어도 선교사에게는 큰 힘이 된다.

 

이 외에도 선교현지의 선교사와 교통을 통해 어떻게 선교사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겠는지 검토한 후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 선교지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단기 선교 팀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선교지에 가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선교사 역을 했다고 할지라도 현지 선교사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기선교 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4) 타 문화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가져본다.

이것은 현지 선교사의 인도를 받아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현지 상황을 잘 모르는 가운데 무분별하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계획적 인 선교사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오게 할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허락 하에 개인 전도에 주력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현지어로 혹은 그들과 교통할 수 있는 언어 로 전도할 수 있도록 충분한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전도를 통하여 결신 자를 얻는다면 선교사와 연결시켜서 후속양육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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