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8-17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2024년 11월 17일 주일 설교(박성일 목사)
1.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30대 후반의 나이에 직장을 관두고 저명한 미국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미국에 오면서 30살의 여자와 결혼했다. 여자는 교회에서 반주자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교회에 잘 나왔다. 남편도 가족들도 다 교회에 다녔고, 본인도 교회에 다녔는데, 문제는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2.그러니 교회에서 듣는 말씀에 반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믿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지켜보니, 이 남편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었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자꾸 방안의 불을 껐다가 켰다가 한다는 것이다. 장난을 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자신의 불안함이 나타내는 일종의 병이었던 것이다. 3.남편은 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생으로 왔는데, 성적이 내려가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구조였다. 원래 심약한 사람인데다, 자기가 좋은 성적을 받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압박감이 사람을 더욱더 염려와 두려움에 잡히게 하였고, 이렇게 마음 속에 염려가 가득하니 여전히 믿음이 들어갈 수 가 없었다. //4.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게 되면, 자신의 일상도 망가지고 인간관계도 문제가 생기고, 공동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믿음 또한 성장하지 않는다. /나는 멕시코에 갔을 때, 큰 나무를 휘감고 영양분을 빨아먹고 있는 굵은 넝쿨을 보았는데, 걱정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5.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음을 키워야 하는데, 동시에 자신의 심약한 성정을 개선하는 노력 또한 병행해야 귀한 복음의 말씀을 제대로 활용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장 1절을 보면 바울은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자신의 소망에 대해서 말한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물론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었다. 아니 바울 주변에는 나름대로 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6.예수님 당시에도 오히려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흠집을 내고 결국은 죽음으로 몰고갔다. 사람에게 열심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서울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교회에서 정말 수고하는 30-40명 정도의 일꾼들이 있었다. 7.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행사도 많았는데, 이분들은 소중한 시간을 사용해서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그분들이 일주일에 몇 번이나 교회에 참석하나 세어보았더니 최소한 11번이었다. 장례나 결혼도 많았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교회를 위하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자기 사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8.열심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런데 열심히 일한 것을 그대로 가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 열심의 방향성과 자세가 주님의 요구치에 맞추어져야 한다. 만약에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나 시기심이 그 원인이라면 이것은 시정되어야 한다. 9.바울은 나름대로 열심히 율법을 내세우고 정쟁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바울이 보니까 이 사람들이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그들의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스스로 인정받고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바울도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본장 2-3절에 잘 알려주고 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남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0.그러니 나름대로 열심히는 살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 이민 온 한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굳이 스쿨버스가 있는데도 다 라이드를 해주고, 비싼 사교육도 시키고, 아이가 어떤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극성맞게 나서고, 세상에 나 같이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가 어디있나 하고 생각한다. 11.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에, 엄마는 자기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진로에 대해서 강하게 압박을 하고 가스라이팅을 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천해 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자기 엄마가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했던 그 말을 자신도 똑같이 아이에게 한다. 아무튼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12.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아이가 자신의 실력과 인성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자신의 열성이 아이의 그런 자질들을 다 망쳐 놓았던 것이다. 결국 그렇게 열심히 수고하고서도 듣는 것은 원망 뿐이었고, 자신의 열심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울 역시 자신이 인정받고 남에게 우월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애를 썼던 사람이었지만, 이것들은 결국에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깨져버렸다. 우리가 한번 신앙생활 하는 것에 대해서 열심을 내야 하는데, 그 열심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 /13.이것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열심히 하다가 때로는 오해를 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감정 상하는 것들을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4.이렇게 우리는 열심히 하지만 방향이 잘못된 사람도 볼 수 있고, 또 애초에 믿음이 없거나, 혹은 믿음을 잃어버려서 과거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자였고,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을 바꾼 것 또한 국제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것에 그 이유가 있다. 15.그래서 본문 12-13절을 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다. /그러니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하나님을 믿기는 하였으나 잘못된 방향으로 간 사람들, 그리고 이제 이방인으로서 믿음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며 그들이 복음의 열매인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의도를 읽게 한다. 16./나는 교회에 나름대로 다닌 것 같으나 여전히 불신과 의심과 반항하는 마음에 의해서 그 안에 온전한 믿음이 생성되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들이 주님 앞에서 알곡과 같은 성도가 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17.물론 이러한 상황에는 나름대로의 가정환경과 삶의 굴곡, 기본적인 심성 같은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계속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10대에 신학교를 갔으니, 주변에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려웠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밤에 해주시는 성경말씀을 듣고 컸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의구심이나 반항을 겪지 않았다. 18./그러나 자신이 전혀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질 것이다. 내가 20대 후반에 지방 청년회를 지도하는 목회자가 되어서 매주일 성경을 가르쳤는데, 사실 가르쳐준 본문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 예상치도 못하는 질문들이 던져졌다. 당시 그곳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업지대였는데, 냉정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나름대로의 날이 선 질문들이 있었던 것이다. 19.그래서 이들에게 답변을 주고 또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젊은 목회자로서의 깊이가 깊어져 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믿음이 좋은 가정의 환경에서 자라났든 아니면 믿음이 전혀 없는 가정에서 자라났던 간에, 오늘날 자신의 자리에서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20.일단은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내 맘과 삶 속으로 내 삶의 진정한 인도자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불러 모셔야 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38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다.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 인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로 고민하고,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영향으로 인하여 눌린 자들은 모두 예수님께 나아가 생명수를 마셔야 한다. 21.그리고 예수님을 부른 사람은 이제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본문 8절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한다. /구원을 얻기 위한 발판으로서 성도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22.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주신 생명수는 믿는 자에게서도 흘러나온다고 했는데,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전에는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어떠한 기적이나 사건을 통해서 생겨난 일시적 믿음은 사라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심령에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야 생명수가 지속되어진다는 것이다. /23.하나님은 구약 성경에서 굉장한 축복에 대해서 여러 번 약속하신다. 그러나 그러한 축복은 한번 주어졌으니 끝이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순종할 때 만이 지속됨을 계속 강조하신다. 영원히 목마름에 시달리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모시는 삶, 즉 성령에 감동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일상을 사는 것이 동반되어야 한다. 24.나는 감동적인 집회나 사건을 통하여 변화된 줄 알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니 다시 전으로 돌아가서 개가 토한 것을 먹는 것을 보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 없이 자기의 감정적인 쾌감이나 충격만을 쫓는 사람은 그 심령을 그러한 것들로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25.요한복음 6:48-51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다. 이 떡은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한다고 하신다. 이 떡은 영생을 주는 떡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어서 영생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이 떡을 계속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다니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전심으로 부르지도 않고 말씀을 보지도 않으면서 믿음이 생기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6.그렇다면 “목사님 말씀대로 예수님을 부르고 성경을 지속적으로 가까이하면 믿음이 저절로 생깁니까?” 하는 질문이 주어질 것이다. 놀랍게도 말씀을 보는 것은, 아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영성의 습관은 마치 땅에 씨앗을 뿌려 놓는 것 과도 같다. 27.나는 아주 메마른 사막에서 몇 년을 땅속에서 버티다 마침내 비가 오면 죽었던 것으로 보였던 몸이 살아나는 물고기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아무런 씨를 뿌리지도 않고 그냥 믿음이 없다고 하는 사람과, 씨를 뿌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그것에 생명력을 얻는 사람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어느 날 심겨진 씨앗 자라나서 교회에 정말 유익한 일꾼이 되는 것들을 보았다. 28.어떤 사람들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는데, 자신의 지식이 교만이 되어 말씀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결국 말씀을 듣는 자리를 지키다가, 자신이 가진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교만이 무너졌다. 오히려 자신의 지식을 내세우며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 중에 막상 상대해보면 그 내용이 빈약한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이러한 태도가 믿음을 가로막는다. 29./그러나 우리가 그런 사람을 위해서도 중도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구원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여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을 주님이 도우신다. 로마서 8:26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고 한다. 30.누가복음 22:31-32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마귀에 의해서 유혹당하고 믿음이 떨어지는 것을 아셨다. 성도가 믿음이 떨어지면 대부분 타락하기 마련이다. 그 마음의 주인이 바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 베드로를 가지고 놀려고 하였지만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고 하신다.
31.여기에 더해서, 바울은 우리가 구원 받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본문 9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 이 고백을 진실하게 하는 사람은 이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32.10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한다. 믿음은 입으로 고백되어져야 그 실체가 생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한다. 33.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당연하게 따라온다 여기에 대해서 같은 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한다. 즉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상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34.썩어지고 잊혀질 상을 위해서도 그렇게 사람들이 애를 쓰는데, 우리는 진정코 가장 중요한 상인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배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설교를 듣더라도 그 내용을 다 쏙쏙 빨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서 튕겨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35.교회는 믿음의 수준이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말씀을 듣게 한다. /그런데 현실을 오랜 시간 관찰하다 보니 자신이 믿음이 없는 사람도 사실은 온전한 믿음을 갖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의 연약하고 근심 많고, 대단하지도 않으면서 의심만 많은 상태가 자신이 지향할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파악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깨우칠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36.어떤 남자 성도는 아내를 따라서 교회를 다녔는데, 다른 사람들이 믿음 가운데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도가 성취되는 것들을 보면서 자기도 믿음을 갖고 싶어졌다. 그런데 솔직히, 자신 안에는 믿음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자리를 잡고 자신에게 믿음을 주시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떼를 썼다. 37.남들을 흉내내서 할렐루야도 해보고 찬송도 부르고, 아멘을 곁들여 성경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을 사모하는 이분에게 성령이 임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이 그 마음을 만지시니 그동안 자신의 논리로 반박하거나 거절했던 것들이 다 수용이 되었다. 놀랍게도 남들 몰래 하던 죄 된 행동들도 갑자기 재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38.본문 17절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 암았느니라”고 한다.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구원으로 들어서는 것이며, 동시에 부정적이거나 염려에 빠지거나 혹은 비관적이었던 과거의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39.우리는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 사실 모두들 자신의 믿음의 상태에 대해서 스스로가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포장하고 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진위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질 것이다. 40.//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신 예수님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굳세게 하라”고 하신다.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한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이 그것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가지고 전파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슈퍼맨을 보고 감동하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길을 가고 있었지만 용기를 내서 변화된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41.이런 사람들이 바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걷는 사람들이다. /주님이 죽으셨다 부활하신 것은 우리의 구원의 징표가 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내 안의 믿음을 더욱더 진실하고 더욱더 부끄러움 없는 것들로 채워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룩한 소망이 함께 하기를 축복한다. 42.주님이 응원해 주시고 도와 주신다. 그 손을 잡고 일어서라.
바라옵기는 말씀과 기도 가운데 마음에 믿음이라는 선물을 품고서 입으로 항상 선한 고백을 하는 살아있는 구원의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