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2 마가복음 4:14-20 “나는 좋은 땅인가?”(박성일 목사)
1.하나님은 성도를 예배로 부르신다. 그리고 예배시간에는 하나님께 순전하게 집중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요청에 순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복을 쌓는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불손하거나 형편없는 예배태도는 그 앞에서 점수를 깎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2.그래서 전도서 5:1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 지어다”라고 한다. 출애굽기 3:5을 보면, 광야의 거룩한 장소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다. 3.신발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묻히고 다니기에,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상태로 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더러운 마음, 분노한 마음, 혼돈된 상태를 진정시키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자신에게 복이 된다. /4.그리고 현대 예배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말씀에 있어서 무지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강조해서 말씀을 배울 것을 요구하신다. 5.신명기 6:6:9을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 날 떄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하신다. 6.그러니 단지 공식적인 모임의 시간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과 친밀하고 가깝게 지낼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자려고 하면, 어머니가 성경 이야기를 해 주시며 신앙이 자라도록 신경 써 주셨는데, 이러한 것들이 사람의 신앙의 토대를 단단하게 한다. 물론 늦게 시작해서 이러한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7.이런 사람은 스스로에게 말씀을 넣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은혜롭고 유익한 말씀을 한번 받았으면, 할 수 있으면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아들이 고등학교때 미식축구를 하는 것을 여러 번 보러 갔다. 나는 솔직히 관심이 별로 없어서 지금도 룰을 잘 알지는 못한다. 아무튼 한 쪽에서 공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상대편 지역까지 이동하면 점수를 얻는다. 그렇기에 상대편은 공을 나르고 있는 선수를 향해 달려와 부딪히고 잡고 태클을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게 한다. 8.그런데 우리 신앙도 우리 안에 주어진 구원이란 보물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우리 대적이 그냥 넋 놓고 보고만 있지 않는다. 중간에 수많은 태클을 건다. 이렇게 태클 걸렸을 때, 화가 나서 그동안 쌓은 신앙적인 신뢰나 인격을 순간에 날려 버린다면 이것은 주님이 기뻐하실 태도가 아니며, 우리 대적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9.어떤 사람은 유튜브나 케이블 TV에 나오는 좋은 말씀이나 감동적인 간증을 듣고서 자기가 “아멘” 했으니 자기가 그만한 신앙이 생겼다고 착각하기 쉽다. 이것은 마치 요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요리 프로를 많이 보고는, 자기가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같다. 나는 아들이 육군 훈련소를 퇴소할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0.그 중에 하나가 생각나는데, 요새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총을 쏘는 게임을 한다. 그래서 자기가 무척 총을 잘 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총을 주면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냉정하게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여기서 반성도 생기게 되고 우리의 신앙을 혼돈케 하는 교만도 제거가 된다.
11.좋은 말씀을 들었다면 그것을 가지고 마음에 품고 있다가 그것을 증명해 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실제로 증명하므로 자신의 살로 만드는 것이, 그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었음을 알게 하여 준다. 예를 들어서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한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는데, 나 역시 미워하는 사람을 보면서 증오와 복수심에 휘감겨 버리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 말씀은 그냥 나의 감정을 만족시킨 정서적인 도구였을 뿐이다. 12.그러나 말씀을 근거로 미워하지 않고 용서한다면, 이제는 내가 받은 그 말씀을 나의 것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왕 예수 믿고 천국가기를 원한다면 신앙생활을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신다. 13.그러니 처음에 말했듯이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을 명확히 잘 알고 그것을 위해 맞추어 나가는 사람이 천국을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12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신다. 14.즉 상대편 나라를 공격하듯이 단단한 정신무장을 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달려들어야 천국을 쟁취하는 것이지 흐리멍텅한 인식이나 희미한 태도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말씀을 어떻게 받는지를 냉정하게 돌이켜 보아야 한다. 15./그리고 말씀을 잘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받는 터전인 우리의 심령의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집을 살 때에도 상태가 어떠한 지를 점검하고 산다. 그런데 주님을 모시는 장소인 우리의 심령이 망가졌거나 너무 약하다면 당연히 이것을 보강해야 한다. 16.그리고 자신을 냉정하게 보기 위해서 항상 사용되어야 하는 마음의 태도는 겸손이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한 신앙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아주 적은 것을 아는 사람이 더 큰 소리를 치는 것을 어려 번 보았다. 우리는 내가 주님 앞에서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작은 행실을 너무 의존하거나 스스로를 교만하게 해서는 안된다. 17.우리가 겸손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예배에 임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은 중요한 훈련이요 우리의 성장과정에 필요한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모두들 선택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 18.물론 그 시간에 예배의 자리를 저버린 사람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주님에게 그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가복음 1:21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는데 회당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 귀신 들린 사람도 교회에 나온 것이다. 마귀도 찬양하고 마귀도 말씀을 듣는다. 다만 성령충만의 순전한 부분까지 이르지 못하지만, 자신이 오히려 경건한척 기만하기도 한다. 19.오래전 LA에서 한 가정이 이사를 왔는데 그 집 아들 하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그런데 찬양단을 맡은 여자 집사님이 이 청년이 찬양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찬양단으로 세웠다. 그런데 사실 그 아이는 귀신 들려 있었다. 이야기가 길지만 결국 귀신을 쫓아냈는데, 말하고 싶은 것은 귀신도 신앙생활 잘하는 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잘하는 것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우리 대적의 기만에 넘어가지 않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본장 3절 이하에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드신다. 우리는 이 비유를 두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씨를 뿌리는 자의 마음에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씨가 떨어진 땅의 상태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보는 것이다. 21.씨를 뿌리다 보면, 즉 말씀을 전하다 보면, 그것이 실망스럽게도 사라져 버리는 일들, 죽어 버리는 일들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좋은 땅을 가지고 결실을 하는 일이 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씨를 계속 뿌리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 의하면 씨, 즉 말씀이 일부는 길가에 떨어졌더니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22.본문 15절을 보면 이것은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갔다고 설명된다. 가드닝(gardening)을 하다 보면 잔디 씨를 뿌리는 경우가 있는데, 땅을 파거나 혹은 최소한 흙을 덮어 주면서 씨를 뿌려야 씨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지, 귀찮아서 그냥 위에다 뿌리면 새가 엄청난 규모로 몰려와서 그 씨를 다 쪼아 먹어 버린다. 23.그러므로 말씀을 얄팍하게 받지 말고 자기의 심령 깊은 곳에 심어야 한다. 깊은 곳까지 가게 하기 위해서는 힘이 들지만, 그래야 그것이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말씀을 반복해서 듣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깊이 박힌다. /그리고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는데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이 나오기는 했어도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고 한다. 24.예수님은 이것에 대해서 16-17절에 설명해 주시는데, 말씀을 들을 때는 나름대로 기쁨으로 받았다. /우리가 감동적인 설교를 들으면 때로는 양심에 찔림을 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다는 기쁨이 생긴다. 그런데 그 신앙의 기초가 약한 사람은 그 지속기간을 길게 가지지 못한다. 25.예수님은 이런 사람에 대해서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라고 하신다. 즉 우리가 말씀을 순전하게 지켜 나가게 될 때, 우리에게 쉬운 일만 생기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 때문에 우리가 공격당하고 넘어지게 하려는 일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26. 어떤 사람은 자기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는데, 왜 생각지도 않은 기분 나쁜 일이 생겼냐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자기 생각일 뿐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내가 말씀으로 인하여 기쁘면 모든 어려움이 피해 간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신앙은 과거에 무당을 만나서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수준의 인식에 있는 것이다. 27.우리 주님은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 안에 성장하면 십자가를 지고가는 과정을 통하여 주님과 더 가까워지게 되고 더 큰 은혜를 체험하며 살게 된다.
그러니 신앙은 세상적으로 보면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을 낮추어야 높여 주신다는 것이지 않은가? 28.그리고 어떤 씨는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 그래서 씨가 자라려고 해도 가시가 막아서 결실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19절에 설명하시기를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와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라고 하신다. 29.말씀을 듣고 주님께 헌신하며 좋은 것을 드리려고 하다가도, 다른 욕심에 눈이 팔려 주님께는 소홀히 대하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지,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고, 스스로는 열등감을 가지고, 때로는 질투심에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막상 또 가지고 나면 처음에도 좋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좋은지도 잘 모르겠고, 이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고생했나 싶으면서 공허함이 생긴다. /30.오늘 본문의 말씀을 웬만한 성도라면 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나도 숱하게 보았다. 그러나 “내가 저 이야기를 알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말씀대로 살고 있는 지를 돌이켜 보고 점검하는 사람이 진정코 성장하는 사람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겸손의 사람, 즉 주님께서 은총을 부어 주시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된다. /31.어떤 사람들은 바로 말씀을 잃어버리고, 또 있던 말씀도 죽게 하지만, 자신의 심령이 좋은 사람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하는 사람이다. 누구라도 자신은 길가가 아니고, 돌 밭이 아니고 가시밭이 아니고 이렇게 좋은 땅이 되고 싶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에 들은 말씀을 가지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사람도 있고, “삭개오” 같은 경우는 2천년이 지났어도 그의 과감한 결단으로 말미암아 졸은 신앙의 본으로 회자된다. 32.그러나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니 말씀을 듣는 자는 기도하며 성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달라고 하며, 자신 안에서 들리는 자기 합리화의 소리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깨달음과 실력을 지향해야 한다. 33.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이것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딸아이와 불편한 일이 있었다. 그 전에 나는 오랜 동안 청년들을 상대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딸 아이는 아빠는 “꼰대”라고 하는 것이었다. 34.그리고 얼마 후 나는 “젊은 학생들이 보기에 나는 꼰대가 맞지”라고 인정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딸이 나에게 맘에 안 드는 것을 말했다. 아빠는 본인 말만 하고 자기 말은 잘 안 듣는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말도 맞았다. 그래서 더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랬더니 사이가 무척 좋아졌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 입에 불을 뿜으면서 아니라고 항변한다. 물론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35.오해받았다는 분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 모습, 나의 부족함을 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면 모두에게 더 나은 태도로 서게 되는 스스로를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가린 눈을 열어서 빛을 보게 하신다.
다윗은 어려운 시간을 지나면서 스스로의 마음이 위축되고 시야가 좁아지고 어두움에 사로 잡혔다는 것을 알았다. 36.그래서 사무엘하 22:29을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오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고 한다. 자신이 어두움에 처했음을 인정하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빛을 받아서 전진해 나가겠다는 태도는 3천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성도의 귀감이 된다. /37.사람이 너무 자기 합리화나 변명, 또는 모든 것을 남에게 탓하는 태도를 넘어서서 스스로를 겸손하게 볼 때, 이미 좋은 땅으로 변해가고 있고 많은 결실을 할 준비가 되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중에 인용을 한다. 38.“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39.말씀을 통하여 깨달음과 반성을 하는 가운데, 자신의 바위와 같은 굳은 마음이 깨어지고 좋은 땅이 되어, 이제는 농부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 있는 인생의 소유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스스로를 성령의 조명 아래 비추어 보는 깨어있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삶에 부합한 인생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