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25. 3.23 (박성일 목사)
마가복음 6:45-56 “마음이 둔해진 제자들”
1.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그의 일상은 매일 같이 지속적으로 피아노를 연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했다 “피아노 연습을 3일을 안 하면 관객이 알고, 2일을 안 하면 전문가가 알고, 하루를 안 하면 내가 안다.” /그러니 훌륭한 실력은 꾸준한 일상의 연습에서 나오는 것이요, 성도의 영성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2.매일 같이 반복되는 연습이나 훈련 없이는 좋은 영성의 소유자가 되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것 없이도 교회를 다닐 수는 있지만,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앙과 영성의 크기가 그대로라면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3.전에 나의 아버지에게 들은 것인데, 병원에 갔는데 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가 입원해 있어서 무슨 병인지를 물었는데, 사실 이 아이는 여섯 살이 아니라 18살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만약에 성도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4./물론 매일같이 반복하는 영성의 습관이 별로 감흥이 없을 수도 없고, 재미도 없을 수 없고 심지어는 잘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상을 사는 것이 성도를 단단하게 하고, 이 단단함이 순간의 충동으로 인한 큰 낭패에서 스스로를 구한다. 반대로, 이것을 게을리 하면 틈이 생기게 된다. 5.사람은 좋은 것을 받고서도 그것을 잘 유지하기 보다는 새나가게 하기 쉬운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 예를 들면, 불안, 불만, 근심 같은 것은 그 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우리 안에서 잘 빠져나가지 않는다. 아니 잘 통제하지 않으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서 우리 마음의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6.이러니 주님의 영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물론 나도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것들을 관리하고 이것과 반대가 되는 믿음과 소망의 영역을 계속 넓혀가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감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7.내가 동부에 살 때, 정말 비가 자주 왔다. 여름에 날씨가 너무 덥다 싶으면 반드시 비가 왔다. 그것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곤 했다. 교회에서 바자회 한다고 물건들을 밖에 전시했다가 다시 접은 일들도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집주인이 2주만 집을 비우면 잔디가 허벅지 높이까지 자라나고, 공터의 잡초는 2미터까지 자라기도 한다. 높이 자란 잔디는 잔디깎이 기계로 깎이지도 않는다. 기계에 걸리기 때문이다. 8.그래서 꾸준하게 깎아줘야 한다. 눈도 올 때마다 계속 치워져야지, 안 치우고 가만 내버려 두면 나중에는 눈 무게 때문에 얼음이 되어서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우리의 믿음도 어떤 기적적이고 놀라운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만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은 언제 있을지 모른다. 9.그래서 매일 같이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님 믿습니다, 저의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입술로 믿음에 대한 고백을 쌓아야 한다. 입으로 나온 말은 실재가 된다. 나는 사람 입으로 나온 말이 마치 휘발유처럼 하늘로 증발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령에 박혀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10.어렸을 때, 나를 무시했거나 저주한 사람의 말은 심지어는 나이가 70, 80살이 되어서도 자신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살아 있고, 어느 순간 분노할 만한 조건이 형성되면 작은 불이 커다란 불기둥이 되어서 나의 감정을 폭발하게 만들기도 한다. 11.반대로 이것을 이기는 용서의 말을 반복적으로 하고, 믿음을 키우기 위한 말을 스스로에게 들려 주어야 한다.
사람이 주변에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가장 말을 많이 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각자의 외로움을 직면하며, 자기 스스로에게도 쓰레기 같은 감정을 쏟아내기 보다는 소망 있고 믿음을 키우는 말을 해야 한다. 12.그래야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단단 해지고 강해지고, 주님을 향해서 단단하게 결속이 되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한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일을 알려 준다. 이 아버지의 아들은 귀신들렸는데, 얼마나 광폭한지, 이미 귀신을 제압한 경험이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감당하지 못했다. 13.예수님은 이 사태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것에 대해서 불편한 말을 하신다.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는 동안,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과, 자기들끼리 서열을 세우면서 싸우는 것에 대해서 여러 번 꾸중하셨다. 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불이든 물이든 뛰어드는 귀신에 잡혀 있었는데, 그러니 부모 마음이 얼마나 타들었겠는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가슴 아픈 소리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14.그러니 마음의 힘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고 하신다. 그러자 이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믿나이나,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한다. /15.자기 스스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주시고 채워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 안에 주님을 향한 전적인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서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16.물론 전에는 순진하게 믿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는 감격의 순간도 있었지만, 현실에서 나의 기대가 꺾이기도 하고, 또 마음 상하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믿음이 깎여 나간 일이 있었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17.그리고 그런 경험은 누구나 하게 된다. 심지어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셔야 되는 상황 앞에서 마음이 어려우셨다. 그리고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이 사용하신 모든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통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즉, 순간순간 믿음이 흔들리고 낙심 되고, 마음이 약해지는 일들이 나타나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과하는 것으로 나의 믿음이 증명되고, 이렇게 단단해진 믿음이 나의 영성과 신앙인격의 뼈대가 되어서 스스로의 성장을 보는 기쁨을 얻게 한다.
오늘 본문의 기사 전에 나타난 일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는데 34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고 한다. 19.그리고 이들에게 말씀만 들려주신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필요도 채우셨다. 그래서 이들에게 놀라운 이적을 일으키사, 떡과 물고기를 먹게 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고 부활하신 후에, 너무나 마음에 낙심과 충격을 겪은 제자들을 위해서 갈릴리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먹이시고, 특히 누구보다 기가 죽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다시 부여하시고 확인시켜 주신다. 20.이렇게 주님은 우리의 육체적인 필요도 채우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하반부를 보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시며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신다. /21.나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 앞에서 하나님께 성실한 마음으로 간구한 것을 하나님이 채우시고 충만하게 하신 것을 어려 번 경험하였다. 때로는 정말 어려운 때도 많았는데, 마치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까마귀를 보내어 먹이시듯이,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도 여럿 만난 것이다. 22.물론 내가 그런 역할을 감당한 때도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기쁨이요 자랑이요 보람이 된다. 그렇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역사하시며 우리가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마음이 빼앗겨 낙담하는 수준이 아니라, 더욱더 믿음의 눈을 열고 진정한 도움이요 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영광 돌리기를 원하신다. 23.예수님의 이적을 통하여 떡을 먹은 남자만 오천명 이었다고 하는데, 제자들은 이렇게 물질마저도 통제하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요한복음 6:15절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이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서 제자들도 이런 저런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24.마가복음 10:35를 보면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무엇을 원하냐고 물으시니, 자기 중 하나는 예수님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니 이들은 인기가 높아지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 예수님을 통하여 권력을 얻기 바랐던 것이다. 25.자기네들 사이에서도 서열 싸움하면서 자리를 원하던 사람들이 더 큰 것을 바라는 욕심이 생겼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큰 무리를 먹이신 다음에 이들은 갖은 상상을 하였을 것이다. 26.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고 낮아 지셨는데, 눈 앞에 보이는 놀라운 광경은 이들의 마음을 흥분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재촉해서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혼자 기도하러 산에 가신다. 즉 이러한 흥분의 흐름을 일부러 차단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사명을 흐트러지게 하고, 제자들의 마음이 엉뚱한 것에 잡히는 것을 경계하셨다. //27.그런데 제자들이 타고 간 배가 바다 가운데 있었는데 자기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거스르는 바람이 불어서 힘겹게 노를 저어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죽어라고 바람과 싸우다 보니, 아까 생각한 달콤한 상상도 일시적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고난 가운데 있는 제자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28.정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도 살면서 정말 생각지도 않은 상황과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딸이 작은 사고가 났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기 딸이 피가 멈추지 않는 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딸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29.그리고 이 위험한 시간에 수술실 옆의 작은 대기실에서 주님을 만났다고 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가장 낮아질 때, 가장 어두움에 빠질 때, 어려움 속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주님을 만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30.이미 갈릴리 호수(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만,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바람 앞에서 좌절하고 마음이 무너져 버렸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48절에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는데 “지나가려고 하셨다”(pass by)는 것이다. 31. 이것은 주님은 우리의 어려운 상황 속으로 찾아오시지만, 우리가 지나가는 예수님을 붙잡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경 “바디매오”가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마지막 기회를 잡았듯이, 우리는 찾아오시는 주님을 붙잡는 자가 되어야 한다. 32.그런데 제자들은 두려움에 멘탈(mentality)가 다 나갔는지 예수님이 유령이라고 생각해서 소리치고 크게 놀랐다. 이들을 안심시킨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실에서 몇시간 겪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불과 전날에 생긴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을 보신다. 33.즉 놀라운 이적을 보고 예수님에 대해서 믿음이 생긴 제자들이, 이어서 닥친 고통속에 믿음이고 뭐고 없이 다 공포 속에 날려 버린 것을 보신 것이다. /사람 안에 있는 불안함, 조급함, 두려움은 어느 때라도 폭풍처럼 나에게 다가와 내 마음을 흔들어 버릴 수 있다. 34.조금전까지 은혜로웠는데, 조금전까지 평화로웠는데, 조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생각도 못한 충격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인생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 예기치 못한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이제 아무것도 하고자 하지 아니하고 누군가 하는 것마저 어렵다고 발목을 잡고 부정적인 말만 하고 두려움을 전파하는 사람이 된다면 누가 그 사람을 존경하고 신뢰하겠는가?
35.나는 노년에 너무 걱정이 많아진 부모와 이것이 오히려 자꾸 발목을 잡는다는 불편한 마음을 품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는 것을 몇 번 보았다. 나의 외할머니는 북한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공산당 때문에 목숨을 걸고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오는 임진강을 배를 타고 넘어서 월남하셨다. 36.남편은 이미 남한에 가 있었는데 국경이 닫혔기 때문에 혼자서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오신 것이다. 그리고 기차를 탔는데, 남한 사람이 친절하게 잘 대해주더니 기차가 속도를 줄이는 구간에서 갑자기 전 재산이 다 든 보따리를 밖으로 밀어내고 자기도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37.그 이후의 타지에서의 고생은 말 안 해도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죽을 때까지 걱정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나는 할머니만 만나면 걱정의 말을 하시는 게 싫었다. 한번은 할머니 생일에 삼촌이 이것 때문에 크게 화를 냈던 기억도 있다. 본인은 걱정된다고 하는 것이지만 상대의 힘을 빼앗아 버리는 것을 좋아할 리 없던 것이다. 38.심지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날 중환자실에 찾아갔는데, 해야 할 일도 많고 바쁜데 왜 왔냐면서 내 걱정을 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한 말이겠지만, 아직 20살이었던 나는 솔직히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 해졌다. 39.내일 돌아가실 분이 죽을 때까지 걱정만 하고 가시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눈 앞에 닥친 고난 앞에서 그 눈이 가려지고 마음이 둔하여졌다. 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서도 시간이 불과 얼마만 지나면 믿음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다. 출애굽기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은 홍해가 갈라져서 애굽 군대가 수장되는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춤을 추며 노래를 한다. 40.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물을 주시지 않는다. 이들은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전에 걱정을 넘어서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쏟아낸 것밖에 한 일이 없는데, 정작 놀라운 승리의 기쁨을 누리면서 마치 자신들이 한 것처럼 착각하기 쉬웠을 것이다. 41.나는 과거에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을 경험하고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얼룩과 상처 때문에, 오늘날은 전혀 믿음의 고백을 하지 못하고 자기 잔머리와 염려만 하는 사람을 보았다. 예수님의 눈에 이 사람은 그 마음이 둔하여진 자이다.
42.그렇기에, 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을 오늘날도 지속적으로 기억하여 오늘날에 고백하고, 그 고백이 미래까지 이어지게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적극적이고 신실한 믿음의 자녀를 축복하시고 여전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43.살면서 우리는 좋은 일도 보고, 또 나쁜 일도 본다. 그런데 나쁜 일을 겪은 충격 때문에, 계속 그것만 말하고 그것에 잡혀서 세상을 원망만 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만 하고 모든 잘못은 남 탓이라고 하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44.그렇게 믿음을 갉아먹는 것들을 방어하고 씻어내기 위해서 매일 같이 믿음의 고백을 하고 성경에 나타난, 그리고 내 인생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들을 현재로 끌고와서 찬양하는 태도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지속적인 축복과, 생각지도 못한 역사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 45.누구라도 마음이 내려 앉는 경험을 하면서 산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당당히 걸아가야 한다.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46.이 찬양의 고백이 자신의 영성을 지키며, 주님 안에 살아온 인생에 믿음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눈 앞의 어려움으로 마음이 둔하여지는 믿음 없는 자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의 신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