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4-07-26 17:07
히브리서 3:13-4:8 “말씀과 믿음의 관계”
인쇄
 글쓴이 : 웹섬김…
조회 : 179  
   7.28 히브리서 3.13-4.8 말씀과 믿음의 관계.docx (25.4K) [10] DATE : 2024-07-26 17:07:15

   2024. 7.28 주일 설교 본문(박성일 목사)

 히브리서 3:13-4:8 “말씀과 믿음의 관계”

      1.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아주 주요한 이유는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집안이 엉망인데, 남편이 이웃집 사람들을 집안에 들여서 식사하고 보냈다고 하자. 남편에게는 당장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아내 입장에서는 집안이 엉망인데,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2.나를 게으르고 살림도 못하는 여자로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생각 없이 집에 사람을 들인 남편에 대해서 화가 치솟아 오른다. /어떤 자리나, 위치나 심지어 의상까지,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중요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몰라주는 상대에 대해서 화를 내기 마련이다. 3.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만 관심 있고, 관심 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에, 관심 없는 것에는 누가 굳이 설명해 주려고 해도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밀리터리물을 좋아하는데, 60-70년대에 나온 미국 영화 중에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 독일군 탱크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당시의 현용 미군 탱크를 가져와서 철십자 마크만 그려 놓았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나에게는 걸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4.반대로 목사로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초신자는 대단히 민감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각자의 민감도가 다르다 보니 반응도 다르고 주장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곳은 “예수를 믿는다”는 하나의 공통분모 때문에 공존하는 곳이다. 당연히 피차 예의를 지키고 지킬 선을 지켜야 하지만,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일을 발견하게 된다면, 저 사람도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해해 주어야 한다.  

         5.그런데 이렇게 성도를 묶어주는 공통 분모인 “믿음”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없거나 병든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특히 어려운 때에 그 빛을 발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서 적군이 쳐들어 와서 무기고를 열었는데 철제무기가 다 녹슬었고, 화약이 다 젖어 버렸고, 식량창고를 열어보니 쥐가 다 갉아 먹었다면, 전쟁을 할 수 없지 않겠는가? 6.따라서 우리는 평상시에도 내가 과연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어려운 때에 믿음을 통하여 힘을 공급받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분이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 오셨다는 것에 대해서 거절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7.세상에는 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은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많은 지적들을 통하여, 이런 수준의 것을 가지고 우리가 구원을 얻을 만큼의 커다란 믿음이라고 감히 이야기조차 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8.그리고 말씀을 듣는 것을 자신의 믿음에 직접적인 근거로 삼지 않는 경우에, 이것은 우리를 힘 없는 신앙인으로 만든다. 9./예를 들어서, 성경에서 감동적인 예시를 보았거나, 도전이 되는 말씀을 들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을 그냥 감동적인 영화 한편 본 것처럼, 감정의 만족이나 자극을 받는 것으로 제한해 버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입으로 고백되는 힘 있는 믿음이 없다면, 그런 신앙은 겉은 그럴싸하게 보여도 반드시 그 실력이 드러날 때가 오기 마련이고, 당연히 주위 사람들의 존경도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피우지도 못한다. 10.짧은 시간에 상대편을 기만할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이 길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시간에는 자기도 스스로 믿음이 좋은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다. /나는 목회 가운데, 믿음에 3가지 단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단계는 “인정”이다.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사 우리를 살리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11.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을 한다. 그러나 아직 마음의 주권을 주님께 내어 놓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항복”이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게 된다. 내 혈기와 주장과 경험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주관하시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실천”이다. 주님이 내 마음에 주시는 명령에 대해서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행동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12.물론 어떠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손해 보지 않을까, 욕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을 수 없으나, 그럼에도 나의 진정한 주님 되신 예수님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을 위해서 마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 행동할 때, 비로서 참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3.사람들은 오히려 조금 뭔가를 했을 때, 자기가 뭐가 대단한 것을 했거나 이룬 줄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착각 속에 신앙이 정체 되어 버린다면, 이것은 스스로를 상당히 제한해 버리고 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믿음이 제한되고, 말씀 가운데 성장하는 것이 정체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완고해 진다는 것이다. 14.그리고 이렇게 완고해 지면 말씀을 생동감 있게 받아 들이는 것에 있어서 힘이 떨어지게 되고, 이렇게 힘이 떨어진 상태에 있다 보니 죄에게 공격 당하기 쉽다. 어떤 사람은 아예 예수를 받아 들이지 않는 완고한 상태에 있는데, 이유는 죄가 그 마음을 사로 잡았기 때문이다. 15.이렇게 아직 믿음에 들어오지 못한 상태에서 가지는 완고함이 있고, 믿음으로 들어온 듯하나, 과거의 기질이나 자기 주장을 주님 앞에서 내려 놓지 못하고 그대로 고집을 피우는 완고함이 있다.

어쩌면 더 깊이 믿음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과거의 나와 죄가 나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6.그래서 우리는 3:13에 나오는 말씀을 돌이켜 듣게 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특히 다음 절을 읽으며, 이 구절이 핍박과 유혹이 많던 당시를 살아가던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강력한 당부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7./그리고 처음에는 좋게 시작했으나 그 마음이 완고해서 멸망으로 떨어졌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 3:19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따라서 애굽을 나오기는 했지만, 이들을 도우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 이들이 패망한 진짜 이유였다. 18./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염려하였다. /목사가 성도에게 바라는 궁극적인 것은, 믿음생활 잘하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이것을 대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도들 안에 믿음이 없다면 편하게 보기 어려운 것이다. 19./목사가 장례에 가면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예식을 집례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그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경우가 있다. 왜 그런지는 충분히 예상 할 것이다. /4:3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얻는 안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반대로 4:6을 보면 복음을 받고서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것에 들어가지 않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7절에는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시편 95편을 인용한다. 20.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고집을 피우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완고함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가져 올 수 있겠는가?

다시 3:15을 보면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고집은 있다. 이것이 아예 인격화가 되어버린 사람도 많다. 누군가가 이것을 건드리려 하면 난리가 난다. 이미 고집이 나의 소중한 일부요, 삶의 의미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21.나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내 고집이 주는 기준으로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세상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요, 당연히 합당한 일로 받아진다. /한편으로는 아무 줏대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인생이 멋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는 것이다. 22./그런데 이러한 자기의 고집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 하고, 혹은 교회는 다니지만, 내 마음의 결정권까지 말씀에 근거한 믿음에게 주고 싶지는 않다. /자기 고집으로만 살려고 하면, 자기가 생각해 보아도 그 알맹이들이 부실하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들으면서 뭔가를 채워야 하겠다는 생각은 들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의 주도권마저 주님께 주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23.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주님께 주도권을 드리면, 뭔가 잃은 것 같고,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리고,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어려워질 것 같고, 손해 볼 것 같고, 위험해 질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열매는 정 반대로 나타난다. /24.솔직히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예측할 수 없다.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결국은 자신의 경험과 과거에 근거해서 주장하고 있을 뿐이지,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각자 인생의 항해를 태평양 같은 바다에서 하고 있다. /배를 타고 가고 있기는 하지만 목적지까지 가본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10 킬로미터 항해한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앞으로 있는 수천 킬로미터 짐작하고 갈 뿐이다. 25.그런데 오히려 키를 잡는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린다면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나는 배를 관리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방향 자체를 예수님이 아시기에 커다란 마음의 짐을 더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오랜 시간 마음에 부담을 주던 것을 믿음으로 맡길 때, 오히려 더 좋은 일들이 있음을 보게 되면서, 정말 믿음이란 것은 실제적인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26.그리고 이렇게 인생에 유익을 얻는 믿음생활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면,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그 말씀이 그냥 듣기 좋은 어떤 도덕적 가르침이나 옛날 이야기로 받던 수준을 넘어서서, 이제는 나의 인생의 기준이요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로 인정하고 주도권을 갖게 하는 것이다. 27.시편 119:105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는데, 말씀을 정말로 내 인생 길을 밝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일 때, 이렇게 말씀을 존중하고 세우는 태도가 우리 인생에도 커다란 유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서 자기 감정과 배치되는 것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당장 내가 어려우니 위로의 말씀이나 해주시면 좋겠는데, 이 상황에서 나보고 용서하고 나보고 더 큰 품의 사람이 되라고 하니, 당연히 편하지 않다. 28.그런데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아무 감정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 어려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비록 감정적으로 거스르고 싶은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함을 아는 것이고, 이 모든 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로서 서고 싶다는 신앙적인 소망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29.그래서 3:6에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 믿음이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는 단단한 성도로서 주님 곁에 붙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 감정이나 상황으로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통제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깊어진 신앙인은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되는데, 이것은 내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읽혀 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능해 진다. 30.그래서 4:12-13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31.이렇게 말씀이 오히려 우리를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 안에 들어오는 강력한 말씀의 능력과 활동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의 권위 앞에서 스스로를 낮춘 사람을 도우시고 축복하신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곧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을 읽겠다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32.본문 4:8절에도 여호수아가 언급되지만, 이렇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유익은 아주 실제적으로 나타났는데, 여호수아 1장을 보면, 모세가 죽고서 이제 백성을 인솔해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것들을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그리하면 여호수아의 앞길을 평탄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여호수아1:7-8), 같은 장 9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힘을 주신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33.이렇게, 들은 말씀을 실제적인 믿음으로 가지게 될 때, 이것이 바로 현실적인 열매와 축복까지도 가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연약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말씀을 귀로만 듣기를 원하기에, 여기에 선을 긋고, 그냥 자기에게 좋다 안 좋다는 평가만 하려고 하고, 그 말씀을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가진 실제적인 결정권자로서는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니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랑할만한 일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34.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그냥 받기만 한 사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통하여 선한 것들이 드러나는 삶을 지향해야 할 텐데 4:2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고 한다. /35.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그 말씀을 인생의 기준으로 세우고, 어려울 때, 분별할 지혜로 내세우고, 인생의 목표로 내세운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이 되지 않겠는가? 36.자기 불안감 때문에 말씀에 주도권을 내어 드리지 못하고, 늘 믿음 없는 태도로 서있다가, 그것이 고집이 되어 완악해지는 불행한 성도가 아니라,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한번 보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37.그래서 하나님은 말라기 3:10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8.일단은 말씀에 근거해서 순종하는 신앙의 도전을 받는 살아 있는 심령의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고, 마침내 실행할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을 축복하시는 좋으신 분이시다.

 바라옵기는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이것을 실행하여 하나님 앞에 선한 열매를 맺는 지혜롭고 용기 있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2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9 누가복음 5:1-11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2024… 웹섬김… 11-08 21
28 사도행전 22:3-16 “주님을 만났다네” 2024일 1… 웹섬김… 11-01 37
27 요엘 2:23-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 웹섬김… 10-27 41
26 골로새서 3:18-4:6 “예수를 통해 새롭게 사는 … 웹섬김… 10-18 34
25 잠언 24:16-25 “의인은 넘어져도 일어난다” 2… 웹섬김… 10-04 57
24 다니엘 7:9-22 “다니엘의 환상과 생활” 2024… 웹섬김… 09-27 75
23 다니엘1:8-21 “하나님을 위해 손해를 감수한 … 웹섬김… 09-20 85
22 에스겔 46:1-12 “문을 열어라” 2024년 9월 15일… 웹섬김… 09-13 96
21 요한1서4:9-21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는 자” … 웹섬김… 09-06 131
20 에스겔 34:11-23 “목자이신 하나님” 2024년 9… 웹섬김… 08-30 116
19 로마서 8:22-39 “끊을 수 없는 사랑” 2024년 8… 웹섬김… 08-23 128
18 요한복음 17:14-26 “하나가 되야 하는 이유” … 웹섬김… 08-14 215
17 에스겔 16:53-6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 웹섬김… 08-09 168
16 누가복음 6:36-45 “좋은 마음에서 좋은 열매가… 웹섬김… 08-01 190
15 히브리서 3:13-4:8 “말씀과 믿음의 관계” 웹섬김… 07-26 180
14 요한복음 3:1-8 “거듭나야 보이는 하나님 나… 웹섬김… 07-26 193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