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4-11-08 17:09
누가복음 5:1-11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2024년 11월 10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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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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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0 누가복음 5.1-11 나는 죄인이로소이다.docx (25.6K) [7] DATE : 2024-11-08 17:09:58

누가복음 5:1-11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2024년 11월 10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1.예수님이 본격적인 사역을 하시기 전에 만난 대상이 있으니 바로 “마귀”다. 전에 뉴욕에서 새신자 교육을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교회가 없다고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공동체가 그만큼 적극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냉정하게, “네, 좋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섭섭하고 기분 상할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그런데 그때 그것을 이겨내면 좋은 성도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하시고, 그런 시간이 왔을 때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늘 즐겁게만 하고 좋은 일만 생기는 곳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의도치 않게 말의 실수를 하곤 한다. 3.원래 의도가 나쁜 것은 아닌데, 말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어떤 사람은 심성은 나쁘지 않은데, 말하는 방법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가족과도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남에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도, 꼭 기분 나쁘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4.내가 대학을 다닐 때, 영어학원에 다녔는데, 그때 영어 선생님이 어떤 일에 대해서 “당신도 아냐”고 물어 볼때, “Do you know?”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치 “당신은 이것을 모르지?” 하면서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지 말고 “Have you ever heard?”(이런 말 들어 보셨나요)라고 물으라는 것이다. 5.이렇게 어떤 질문을 하거나 대답할 때, 지혜있게 대답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올려주고 서로간에 소통이 되게 하고 친밀함과 신뢰를 더하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주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어떤 원하는 것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원망조나 불평을 하는 말투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고 해보자. 그 요청을 들어주고 싶겠는가? 6./한번 내가 흉내를 내어 보겠다. 어떤 아내가 너무 같고 싶은 가방이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달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남편에게 “내가 당신 같은 남편 만나서 그런 가방이나 살 수 있겠어? 순이 엄마는 남편이 그 가방을 사줬다고 하는데, 내가 지지리도 복이 없는데 서방 복은 있겠어?”라고 한다면 남편은 아내가 그 가방을 원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이런 말투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바로 노예기질에 물들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7.그들은 애굽을 벗어나고도 끊임없이 불평하였다. 그리고 결국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축복의 땅을 누릴 수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지혜 있고 겸손하게 말해야 한다. 반대로 말해서 무식하고 교만한 말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고, 나에게 준비된 축복을 발로 차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때, 겸손하게 올려 드려야 그것이 상달되어질 수 있다. 8.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불림을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의 태도가 어떠하냐 하면 다니엘 10:12절에 보니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 날부터 네 말이 응답을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고 한다.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께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9.자기 주장을 하거나 자기 의를 내세우거나 교만한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사람들의 교만은 그 사람의 진짜 실력과 하등 관계가 없다. /오히려 조금 알고, 조금 어떤 일에 관련되었을 때, 더 잘난 척을 하고 과장하고 자기를 내세우려고 한다. 욥기22:29은 말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10.물론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아니 그것보다도 우월하고 싶고, 그러다보니까 자기 주위의 사람보다 자기가 못하다고 생각할 때,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그런데 오히려 스스로의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더 쉽게 교만해지고, 또 쉽게 상처받는다. 11/나는 목회를 하면서 항상 은혜 받을 준비가 아니라, 항상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하기 피곤하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밖으로 밀어놓고는, 자기에게 잘해주지 않았다고 원망의 소리를 한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단단해진 사람, 그 마음의 중심이 온전한 사람은 겸손의 말을 할 수 있다. 누가 나를 인정하나 못하나에 대해서도 너무 마음을 두지 않는다. 12.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안에 있는 예수가 심어준 복음이라는 보물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말투나 태도 때문에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멀리 두게 하고 있다면, 여기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입으로 나가는 말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누군가의 심령에 박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들으신다.

13.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베드로의 태도를 유심히 보게 된다. 오늘 본문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4:38에 보니,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 하셨는데, 게네사렛 호숫가(갈릴리 호수의 서쪽 해안)에 서서 말씀을 전하시려고 하셨다. 참고로 당시에는 큰 물을 바다라고 불렀기에, “갈릴리 호수”라고도 하고 바다라고도 하는 것이다. 14.예수님은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셨는데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이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가 바로 베드로(시몬)의 배였다. 예수님은 배를 육지에서 조금 거리를 두게 하시고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왜 육지에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배에 타셔서 말씀을 전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은유적인 해석들을 많이 하지만, 말씀들 마친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린 명령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15.즉 말씀이 끝나고 난 뒤에,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실행이 있어야 함을 보이신다. /그런데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의 어부였고, 예수님은 어부 출신도 아니었다. 심지어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면서 고기를 잡으러 하였지만, 잡지 못했다. 갈릴리 호수에서 수많은 시간을 그물을 던지며 `물고기를 잡은 베드로가 예수님 보다 잘 알지 않겠는가? 우리도 살면서 때로는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방향에 대해서 자신의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주장을 한다. 16.내가 전에 해보았지만 안되었다는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방법말고, 내가 전에 했더니 되었던 방법을 주장하기도 한다. //전에 내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차를 타고 1분만 가면 허드슨 강이 있었다. 그래서 종종 퇴근을 하면서 잠시 낚시를 하곤 했다. 뱀장어도 있고, 여러 종류의 배스(Bass)도 있고, 청어도 있고…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잡은 것은 “메기”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메기를 잡지 못했다. 17.그런데 오랜 시행착오 끝에, 메기는 바닥에 살기 때문에 낚시 바늘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서 충분히 강바닥까지 가라앉혀야 메기를 유인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놀라운 속도로 연속으로 커다란 메기들을 잡을 수 있었다. 메기는 아주 공격적이라서 먹이를 굉장히 난폭하게 물기 때문에 낚시하는 재미가 있었다. 18.또 내가 서 있는 곳은 높은 강둑이라서 메기를 끌어 올리려면 상당한 힘이 들었다. /이렇게 바로 옆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방법을 깨달은 사람이 당연히 오늘 처음 와서 낚시대를 던진 사람과 결과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물고기를 잡는 것에 있어서는 깊이가 중요한데, 어제 밤새도록 그물을 쳤으나 허탕을 친 베드로에게 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이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다.19. 아마도 그 시점에는 그물을 얕은 곳에 내려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고기를 낚는 것은 하루 중의 시간과 일년 중의 시간과도 다 상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아는 사람이 물로기를 잡는 것이다.

아무튼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이 자기 장모님의 열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셨지만, 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 마음 속에 불편함이 생겼던 것 같다. 20.사실 밤새도록 일하고 이제 그물을 손질하다가 심지어 설교까지 들어서 피곤이 대단했고, 또 집에 돌아가면 많이 잡았냐고 물어볼 가족들에게 민망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화가 안나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베드로는 불편함 마음이 있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한다. 21.즉 이곳의 현실은 내가 더 잘 알고, 밤새도록 해도 안 잡히는 날이라는 것을 경험했지만, 그래도 순종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씻어 놓은 그물을 다시 싣고 가서 펼쳤는데 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배에 채우매 배가 잠길 정도였다. 22.그런데 이런 현실을 보면서 베드로의 마음에 큰 격동이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장모님을 고쳐 주셨으니 시키는 대로 하긴 하지만, 예수님이 여기서 고기 잡는 것을 나보다 잘 알 수 있냐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주님의 말씀대로 고기가 넘치게 되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한다. 23.즉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토를 달고 불편한 마음으로 작업을 떠난 것에 대해서 자신의 죄성을 고백한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불평하고 불신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원망을 한 말이 있다면, 그것을 회개해야 한다. 24.성도의 겸손은 바로 주님 앞에서 회개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순종에 대해서 자주 말하지만, 순종은 자신의 부정적이고 약한 마음을 이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베드로도 피곤하고 자기의 논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어쨋든 순종하였다. 물론 베드로만 이런 마음의 과정을 겪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어부들, 이제 곧 예수님의 제자들이 될 사람들도 예수님께 순종하여 얻은 놀라운 결과에 대해서 비슷한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25.그런데 나를 떠나라고 하면서 죄인이라고 하는 베드로에게 오히려 주님은 가장 큰 기회를 주신다.

본문 10절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예수님의 이적 앞에서 놀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음 절을 보니 배를 육지에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전에도 더 귀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26.그런데 이제 눈 앞에 확실히 드러난 것을 보고는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다. 이렇게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가장 빛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적대자들에 의해서 모함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파워게임에서 밀리신 것으로 보였다. 제자들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고, 심지어 자신들 중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사실마저 알게 된다. 27.그러니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도 낙담하여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을 다 무위로 돌릴 판이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3을 보면 갈릴리 호수로 돌아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에게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도 배에 올라타서 밤새 고기를 잡으려 하였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28.예수님은 이들을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게 하셨는데, 이제 다시 고기 잡은 어부의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날이 새어갈 때, 한 사람이 바닷가에서 이들을 향하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한다, 그러면 잡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랐더니 물고기가 많아서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한 제자가 그 사람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보았고, 베드로는 바로 물로 뛰어 들어 주님께 나아갔다. 29.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이나 물으신다. /처음에 베드로가 자신은 죄인이라고, 나를 떠나라고 하였던 그 자리에서, 엄청난 시련과 좌절을 겪고 마음이 무너진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시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질문을 하셨고, 그로 하여금 다시 시작하게 하셨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혹시라도 부끄러운 상태에 떨어지거나 좌절할 때, 우리는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30.자기가 어려운 상태에 떨어진 것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잘못이나 화나게 하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붙들고 분노만 삭히고 자신의 형편 없어진 상태를 변호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의 해답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31.그리고 여전히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이 우리 힘과 겸손의 근원이다. 나는 민망한 얼굴로 주님의 질문에 대답한 베드로를 생각해 보았다. /몇 해 전, 나는 눈 앞에 베드로에게 다시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동상이 있는 갈릴리 바닷가에 서서, 우리가 내세울 것은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입장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을 향한 순종과 사랑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32.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만 주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며,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불만과 불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반성하며, 주님의 명령에 마침내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그 태도가 성도를 주님과 더 강하게 결속하게 하고, 심지어는 무너진 것도 다시 세우는 힘을 흘러가게 한다. 주님 앞에 교만한 주장을 하기보다, 자신을 낮추고 그 안에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성도의 삶이다. 33. /누구라도 다 자기의 인생의 무게를 지고 살기 마련인데, 이왕 지고 갈 거라면 죄짐이 아니라 주 물론 주님의 말씀도 어떤 때는 즐겁게 받아 들기기가 쉽지 않고 반항하거나 거역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16:24)고 하셨다. 주님 앞에 겸손해진다는 것은 이렇게 자기의 신앙적이지 않은 감정과 논리와 충동을 이겨내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34.그런 사람이 진정코 십자가의 신비를 따라 올 수 있는 사람인 것이고, 이것을 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주님이 지고 갈 능력을 허락하신다. 주님의 영광을 길로 가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35.지나간 인생을 돌이켜 보았을 때,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간 흔적이 있어야지, 내가 뱉은 더러운 말과 원망과 불순종의 모습들만 있다면 이것이 어찌 주님을 기쁘시게 한 삷이겠는가? 36.자기의 본성과 교만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은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부족한 부분을 말씀과 성령으로 채우는 가운데,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주님을 온전히 따라가는 사랑스럽고 귀한 성도의 삶을 살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는 가운데 삶의 인도자이신 예수님의 사랑가운데 거하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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