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4-11-01 17:11
사도행전 22:3-16 “주님을 만났다네” 2024일 11월 3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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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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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사도행전 22.3-16 주님을 만났다네.docx (34.0K) [6] DATE : 2024-11-01 17:12:14

사도행전 22:3-16 “주님을 만났다네”

2024일 11월 3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1.몇 년 전에, 지방 목사님들을 대동해서 “무디” (Dwight Lyman Moody) 생가를 방문 하였다.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평신도 전도자로, 2억 명을 만났다는 무디의 고향인 “Northfield, MA”는 그가 태어났을 때에도 참 시골이었겠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무디의 집에서 바라본 경치는 영성이 깊어지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그는 시카고에서 주로 활동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 공부하고 영감을 얻고 돌아가곤 하였고, 50대에는 자기 집 주위에 신학교를 세우고, 수 많은 선교집회를 열어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로 뻗어나가는 선교사가 되도록 기여 하였다. 나는 집회가 있었던 강당 길을 걸으며, 1880년대, 영적인 흥분과 기쁨으로 평생을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젊은 20대 예비 선교사들의 대화 장면을 상상하였다. /3.언덕 높은 곳에는 무디 부부의 무덤이 있고, 무디의 묘비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적혀 있고, 그의 아내인 엠마의 묘비에는, 그의 종은 그를 섬겨야 하고, 그들은 영원히 같이 다스릴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무디는 자신이 자라난 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목회자로, 선교사로 자라나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큰 영향력을 끼쳤다.

        /4.무디가 네 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교육 상태를 마치고, 일터에 뛰어 들어야 했다. 고향에선 농사를 짓다가, 보스턴에 가서 구두 가게에서 일했는데, 비즈니스에 있어서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무디는 자기 나름대로 교회를 다니니까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했고, 더 깊은 자각이나 도전을 받지 못했었는데, 1855년 4월 21일, 그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이 무디를 찾아왔다. 5.무디의 꿈은 빨리 돈을 벌어서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었는데, 킴볼은 무디를 마음에 두고서 고민 고민하다가 어느 날 마음을 정하고 무디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무디,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체험이 있는가?” /”글쎄요…...저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있고,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말은 자네가 개인적으로  사함을 받고 거듭난 적이 있는지 묻는 것일세, 나는 자네 영혼을 두고 기도를 많이 했네, 오늘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겠는가?” /무디는 자기가 교회에 나가니까 신앙인이라고 생각했는데, 킴볼의 말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6.그날 무디는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동시에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여, 죄 사함 받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날 감동받은 무디는 이날을 자신의 영적인 생일로 정했다. /이렇게 자신 안에 확신을 얻은 무디는 미국 전역과 영국을 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게 하였으며, 죽을 때에도 아까 처음에 말한 고향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1899년 12월 22일 금요일 아침, 그의 아들이 아버지인 무디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복도에서 들었다. 땅이 물러가고   앞에 하늘이 열려있다 /7.아들은 곧장 무디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무디는 “이것은 꿈이 아니다, , 정말 아름답다, 정말 황홀하구나, 만일 이것이 죽음이라면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있다, 나는 가야 한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으로도 나를 더 이상 잡아둘 수 없다, 마차가 방안에 와 있다”고 말하며 천국을 기대하며 숨을 거두었다. 

       우리가 모두들 세상을 떠나야 할 때를 맞이해야 할 텐데, 준비된 자로 세상을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도 추한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8. /우리가 아름답게 인생을 마치는 방법은 천국소망을 품고 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에게 주어진, 세상과 바꿀  없는 놀라운 특권임을 자각해야 한다. /인생의 날들 속에서, 우리가 성취하기를 바라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전도자 바울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예루살렘에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을 배신자로 여겼다. 9.사실 험악한 분위기 때문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예루살렘에 재해가 있어서, 해외교회에서 모금을 하였던 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사랑했던 예루살렘에서, 풀어야 할 것을 풀고 가야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면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해하려 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이다. 사도행전 21:1을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니, 난리가 났다. 사람들이 흥분해서 소동을 부렸다. 10.이러다 보니 당시 치안을 담당하던 로마의 천부장(centurion)은 맞고 있던 바울 앞을 막아선다.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려 했다기 보다는 현재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 가운에, 일단 혼란스러운 사태를 진정시킨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뒤를 쫓아가며 바울을 없애 버리자고 외친다.

       천부장은 바울에게 헬라 말을 할 줄 아냐고 하며, 네가 이 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4천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간 애굽 사람이냐고 묻는다.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자신은 유대인이며, 큰 도시인 “다소” 출신임을 알린다. 그리고 지금 자기를 죽이려고 흥분해 있는 백성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달라고 한다. 11.바울은 자신을 죽이자고 흥분한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순간이, 오래 시간 해외선교를 하면서도 여전히 이 자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품었던 바울이, 그의 안에 있던 것을 쏟아내는 시간이었다. 바울은 히브리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자신은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예루살렘에서 자라나 “가말리엘” (당시 최고의 랍비) 아래에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던 자라고 한다. 12./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열심을 가지고 공을 쌓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치게 될 기회가 생겼을 때, 누구보다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달라붙은 사람이었다. /”다메섹”은 이방 땅인데, 거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도망간 것을 알고, 굳이 그걸 멀리까지 가서 잡겠다고 체포 원정대롤 꾸리도록 요청해서, 실제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던 사람이었다. 13.본문 4절을 보면, 바울은 예수 믿는 것을 박해해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사람들을 감옥에 넣었다고 한다. 이 내용은 26장에 다시 알 수 있게 되는데, 10절을 보면, 자신이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고 , 또 죽일 때에 찬성투표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독 받도록 압박하였다고 한다. 9:1을 보면,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고 한다. /14.사도행전을 보면, 기록을 전하기 어려운 시절에 바울이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다가 주님을 만난 것이 세 번이나 길게 적혀 있다. 그만큼 바울이 주님을 만났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아주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다메섹으로 체포 원정대를 대동해서 가고 있던 바울, 아니 이 당시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 15.사울은 오정쯤 되어 하늘로부터 큰 빛이 자신을 둘러 비치니 땅에 엎드러졌는데, 놀랍게도 그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는 예수님의 소리였다. 예수님은 독이 바짝 오른 사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나를 박해 하느냐고 하신다. /나중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가르치는데, 예수님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을 때, 그것을 자신의 핍박으로 받으셨던 것이다. 16.사울이 놀라서 누구시냐고 묻자, 예수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신다.

       사도행전 26장의 표현을 보자면 예수님은 사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구나고 하신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냐고 묻는 사울에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시고 이어서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네가 나를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15-18)”고 하신다. 17./사울은 이 과정에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아나니아”에게 가라는 주님의 명령대로, 그의 집에 가서 머물면서 그 동안 자신이 욕망을 품고, 열심을 품고 살아오던 방향에서 철저하게 깨지게 된다. 그 동안 자신은 나름대로 옳은 일을 한다고 공명심에 빠져 있었던 바울이, 이제 아나니아의 안수 가운데 성령 충만하게 되니, 눈을 덮고 있던 것이 벗겨지고, 세례를 받는다. 18.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나가고 다시 보게 되었는데, 우리 또한 우리 눈을 덮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은 빨갛게 보인다. 파란 안경을 쓰면 파랗게 보인다.

        나는 살면서 어떤 한 부분으로 편향되면서,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고 늘 분노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마 여러분도 보았을 것이다. 이런 안경을 쓰고 있으면 무엇을 보아도 다 뒤틀려 보인다. 자기 마음의 안경이 이미 왜곡된 렌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보아도 다 자기 맘에 분노를 일으키거나 또는 자극을 받는 것으로만 연결이 된다.  19./여러분은 보았을 것이다. 상처가 많은 여자가, 여자를 쉽게 바꾸는 바람둥이의 친절함에 대해서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을.  일단 상대방의 매력에 빠진 안경을 쓰고 있으면, 제대로 분별이 되지 않고 그냥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놀랍게도 항상 똑똑하게 바른 소리를 하던 여자들이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어서 주변을 실망시키게 되고, 우리는 그런 경우 “헛 똑똑이”라고 부른다. 20./그런데, 영적인 헛 똑똑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그러나 살면서 자신의 욕망을 그럴듯한 명분을 가진 의로움으로 포장하고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그것이 눈에 덮인 사람이 아니라, 이제 진정코 내가 보아야  것이 무엇인지를   있는 사람이  인생을 전혀 다르게 살아갈  있다. //예수 믿는 사람 눈에는 예수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 욕망과 관심이 있는 것만 보인다. 21.그런데 우리의 갈망이 예수에게 향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무디가 주님을 만난 후 그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함 받은  아침, 밖으로 나가서 만물을 보았습니다. 태양이 그토록 사랑스럽게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지저귀는  소리도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2.전에는 멀리 서서 그냥 “아는 주님”이었다면 이제는 “사랑하는 주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게 되면,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싶어진다. 사람 눈만 의식하면서 별 것 아닌 것에 시험들고 충동 받는 수준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싶어진다./

    사실, 자신이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지 않고 겉에서 보는 사람에게, 주님은 무서운 분으로만 생각된다. 23.이 경우, 일단 자기 자신이 주님 앞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묻어 두었던 종이 오히려 주인을 이상한 사람으로 책임을 돌리듯이, 자기의 신앙이 빈약할 때, 그 탓을 주님이나 교회에 돌린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 중에 구원의 확신, ,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24.교회에 나왔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구원에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고 이해 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말씀에 자신의 소리를 순복시키는 훈련을 하며, 더욱더 영적으로 열린 귀와 열린 눈을 가지도록 성장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다.

       25.무디는 “헨리 무어 하우스”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주님은 공포에 쫓기어 천당에 가는 노예를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이었다. 사랑의 주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나누기 원하신다. //영국에서 만난 “헨리 발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완전히 헌신한 사람을 통해서 하실  있는 일을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26. /교회를 다니면서 죄의 씻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진정코 주님을 만나서 확신을 얻기를 갈망하고 이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이제는 거듭났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갈망에 여러가지 삶의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27.그러나 이유가 무엇이 되었던 간에, 한번 사는 인생을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고 살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의 가사를 들어보자. /내가 주를 처음 만났을 때,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 말 없이 홀로 걸어가신 길은 영광을 다 버린 나그네, 정녕 그 분이 내 형제 구원했나, 나의 영혼도 구원하려나, 의심 많은 도마처럼 물었네, 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28.내가 주를 만났을 때 죄악으로 몹쓸 병든 몸, 조용히 내 손 잡아 이끄시며 병든 자여 일어나거라, 눈물 흘리며 참회하였었네, 나의 믿음이 뜨거웠었네, 그러나 죄악이 나를 삼키고 내 영혼 갈길 잃었네. /내가 이제 주를 만남으로 죽음에 길 벗어나려네, 변찮는 은혜와 사랑 베푸신 그 분 만이 나의 구세주. 주 예수 따라 항상 살리로다, 십자가 지고 따라가리라, 할렐루야 주를 만난 이 기쁨 영광의 찬송을 돌리리. 29.//주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 교회의 리더가 되고, 앞에 세우면 그 교회는 문제에 빠지게 된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능력을 얻는 것이다. 생각이,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고, 구원을 확신하기에 더 용감해진다. 교회에 다니면 교인이지만, 주님을 만나면 이제 진정한 신자가 된다. /30.바울은 이미 훈련이 잘 되어 있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택하사 사용하셨다. 그가 과거를 넘어서서 거듭났을 때, 그의 발길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 우리가 그만큼 큰 일은 아니더라도, 자기 영혼부터 구원의 확신을 얻어야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신 주님은 마태복음 7:7-8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31.“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다른 구하는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먼저 주님을 만나기를 구하고 문을 두드리라, 좋으신 주님이 오히려 우리 안에 들어와 함께 하실 것이다. 32./자기 실력으로만 살면서 늘 넘어지고 패배하고 우는 소리하고, 분노에 잡힌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서 천국을 향해 전진하며, 세상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복되고 행복한 성도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주님 만나기를 갈망하며, 주님께 헌신을 다짐 할 수 있는 준비된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는 기쁨을 드리며, 자신의 삶은 행복함으로 힘을 얻는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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