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4-08-01 19:29
누가복음 6:36-45 “좋은 마음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박성일목사202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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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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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누가복음 6.36-45 좋은 마음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docx (24.9K) [8] DATE : 2024-08-01 19:29:25

누가복음 6:36-45 “좋은 마음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

 (박성일목사 2024.8.4)

        1.사람이 좋은 환경과 좋은 스승과 좋은 가족을 만나게 되면, 그 인격의 형성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에 자기가 지각 있고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고 컸다면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고 특권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과거에 박힌 부정적인 압력이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예를 들어서, 어떤 딸이 많은 집에서 첫째 딸이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부모님 말도 잘 들을 때, 엄마가 다른 딸들을 첫째 딸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심어 주는 일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이렇게 열등감이나 비교에 의한 분노는 가족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생활을 하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비교”이다. 3.비교는 아직 어린 아이의 인격적인 토대를 아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건물을 짓기 위해서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을 섞어야 하는데, 여기다가 불순물을 갖다 부어대는 것 과도 같다. 비교를 통한 자극을 받았다고 마음의 결단을 하게 하고 사람이 바뀌는 일은 없다. /4.게다가 비교를 당하고 자란 여자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면, 자기 남편을 다른 집 남편과 비교한다. 다른 집 남자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겉으로 드러난 작은 일만 가지고서 정작 평생 자기와 살겠다고 선언을 한 고마운 남편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다.  

5.내가 유학생때 동기 한 명을 내가 다니던 학교에 오도록 도와 주웠다. 정작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에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지만, 타국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되니 당연히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누나가 네 명 있었고, 그래서 맞선을 36번이나 보았지만, 다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교사였던 한 여자가 자기가 아니면 이 남자를 구제할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교사인데, 시어머니가 교장 선생님이었다.6. /아무튼 유학을 왔고 아들 둘을 낳았는데, 어느 날 그 집 앞에서 놀다가 둘째 아기를 안아주었다. 그냥 친구 아들을 예뻐하는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안았는데, 놀랍게도 불똥이 내 친구에게로 튀었다. 친구의 아내는 내가 아기를 안은 것을 보고, 당신 친구는 저렇게 애기도 잘 봐주는데,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자기 아빠이고, 나는 그냥 한번 안았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는 그 아기를 봐도 그냥 머리만 쓰다듬어 주고 더 이상 잘 해 줄 수가 없었다. 7. /사람이 자꾸 비교를 하면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비교 대상과 자신 혹은 배우자를 그들과 동일시하는 성향이 많기 때문인데, 이렇게 동일시 하는 큰 이유는 비교의식과 열등감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문제 밑에는 바로 이러한 감정이 깔려 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심하게 남들보다 우월하거나 특별하고 싶고, 남에게 작은 모욕만 당한다고 느껴도 성질을 낸다.8. /나는 목회를 하면서 “복음”이란 것이 너무나 귀한 향유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귀중한 것을 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고 이 마음이 단단해야 향유가 새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즉 어느 날, 복음에 감동되어 주님께 헌신하겠다고 생각했던 의지도,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 자기를 지켜낼 만큼 견실하지 못하면, 그 깨진 틈으로 의지도 새어 나가게 되고, 어느새 복음 없이 자기 혈기와 자기 의로만 살아가면서 구차한 변명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었다. 9.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섬기는 우리의 신앙의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신앙인격적으로도 성장하고 단단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하는 것의 중심에는 바로 자신의 약점, 즉 비교당하거나 열등감을 느끼면 폭발하는 불안정성을 고쳐야만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23에 보니,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한다. 10.더더군다나 이러한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분노가 붙게 되면, 이것은 복수심으로 변질된다. 우리가 부당한 감정을 느끼게 한 사람에 대해서 복수심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감정에 따라서 죄를 짓는 수준을 벗어나기를 원하신다. 물론 마음 속에서는 내가 당하는 일이 공평하지 않다, 부당하다라는 주장이 있기 마련이다. 11.그러나 성경의 어느 인물 중에 부당함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따지자면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셔서 결국 모함당하시고 고소당해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죽으신 예수님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의 욕망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의 분노가 복수심으로 바뀌는 것은 신앙인에게 결코 덕스럽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12.물론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나보다 돈 많고, 나보다 성공하고, 나보다 좋은 남편 만난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자신만의 숨겨진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남들이 불행해지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으려는 것은 인간의 저열한 속성을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고 축복을 얻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해 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13.비록 저 사람이 지금 나보다 좋은 상태에 있다할지라도, 내가 하는 축복의 말이 결국 쌓여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기 마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느 날 상을 내리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상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마음의 충동을 이겨내고, 오히려 주님이 원하시는 선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14.오늘 본장을 보면 35절에 예수님은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하신다. 뭔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상이 크다고 하시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된다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가 자기 감정대로 하지 않고 선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복 받기 때문이다. 15.하나님은 짐승과 같은 본성, 더럽고 추한 죄의 기질에 여전히 묶여 있으면서 자기의 상태를 변호하는 것을 벗어나 우리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분량에 이르기를 기대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 36절에 보니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하신다. 16./절대로 자기 마음의 분노와 비교에 의한 열등감에 의해서 충동 당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지 못한다. 놀랍게도 자신도 그러한 상태에 있으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멈추어야 한다. 39절에 보면 예수님이 “맹인이 맹인을 인도 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시는데 먼저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고 신앙인격을 다스린 사람이 타인에게도 빛을 비추는 가운데 인도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17.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자기도 감당 못하는 사람들이 남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고, 아주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교하고 평가 내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자신의 숨겨진 열등감과 분노를 덧대서 자기가 당한 감정을 남에게도 전가시키는 좋지 못한 습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18./어떤 사람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서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데, 자기도 공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이 좋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그 학교를 깎아 내리고 무시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자기도 학력 때문에 마음 고생했으면서 왜 남들에게 그런식으로 말한단 말인가? 결국 나도 이 문제 때문에 마음 아팠으니 너도 아프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19.우리는 이런 사람을 나이와 상관없이 미숙한 사람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사방의 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비판하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정작 자신들의 내면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관계를 상호적이라는 것이다. 본장 31절을 보면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다. 20.37절에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어서 우리가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도 도로 헤아림을 받는다고 하신다.  남들을 분석하는 행동은 항상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것을 생산하기 마련인데, 자기가 남들에게 했던 그 행동대로 자신 또한 돌려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21.사람이 남을 비판하면 당연히 정죄까지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과연 남을 정죄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내가 남들을 정죄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 사람이 자꾸 정죄하고 다니면 교만해지기 마련이고,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인간의 속성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인간을 축복하실리 없다. /우리를 가만히 보면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우리의 죄된 속성과 맞물려 있어서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본성대로만 따라가면 나오는 것들이다. 22.그러나 그러한 비판과 정죄를 멈추고, 더더군다나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상당한 연단과 신앙적인 성숙의 과정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내 마음에 충만해야 이러한 것들을 더 힘있게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역시 같은 자리를 빼앗으려는 시기와 연약함과 과거의 분노와 정욕과 교만 같은 것들을 물리치고 지켜야만 유지할 수 있다. 23.그러므로 힘이 있어야 성령충만 할 수 있고, 자꾸 인간의 못된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다듬어지고 그 말씀이 무게 있게 내 안에 들어오게 해야 힘이 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 마음도 통제하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시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본문 41-42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상대의 눈에 있는 티를 빼겠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을 나무라신다. 24.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고 하신다. 즉 먼저 자격을 갖추고 난 뒤에 말을 하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을 들으면서, 황당하게도 비난 듣는 사람이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인 것을 보곤 했다. 사람이 남을 비판하므로 자기가 더 의롭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것은 완전히 착각이다.  자기도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해 내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만 정의의 사도인 척하는 것은 위선이다. 25.나는 목사로서 적어도 위선자는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말만 그럴듯하게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 자기를 내세우는 위선자를 찾아 보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내가 얼마나 남을 잘 비판하고 흠을 많이 찾아 냈느냐 하는 것은 나의 구원에 하등이 도움이 되지도 않고 상대방의 마음에 분노와 불신만 심어 줄 뿐이다. 26.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자신의 약점, 자신의 병든 부분을 뽑아내는 사람은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요, 들보를 뽑는 강력한 방법은 바로 “회개”이다. 자꾸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말을 지어내려고 하기 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자기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을 뽑아내려고 자각하는 사람은 가능성의 사람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이끄는 사람이다. /27.눈의 들보가 한번에 뽑히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꾸준하게 조금씩 뽑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일상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자신을 돌이키며 반성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눈에서 들보를 뽑게 되면 어떠한 유익이 있냐 하면, 바로 자신의 퀄리티(quality)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28.한국에서 나오는 육우(beef cattle)들은 대부분 품질이 무척 향상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수한 수소 50마리 정도를 선출하여 전국에 있는 모든 암소를 임신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 품질이 좋은 소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사람도 자신의 과거에 여러가지 열등감도 있고, 남들보다 못한 면도 있고, 약점도 있고, 과거의 그림자도 있고, 분노도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뽑아내고 좋은 것을 받는 사람이 될 때, 그 격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29.예수님은 43절에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고 하신다. 나무의 가치는 그 열매로 알게 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나의 삶에 신앙적인 열매가 없는지 알고 싶다면, 먼저 나는 주님 안에서 좋은 나무인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30.자기의 발전과 성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남들만 비난하고 흠을 잡은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떠 사람은 이런 과정에서 생긴 “자기 의”를 귀하게 여기지만, 이것은 각자의 심판의 시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31.도리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처럼, 자비를 베풀고 정죄하지 않고 용서를 베푸는 것이 우리를 바로 좋은 나무가 되게 하는 것이요, 이렇게 좋은 나무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농부이신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 본문 마지막 절을 보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한다. 32.즉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 좋은 나무의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쌓으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이렇게 쌓은 것이 있을 때, 평상시에도 좋은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부정적이고 은혜롭지 못한 것을 품고 살면서 이것을 입밖으로 쏟아내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쏟아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 못된 나무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33.자기 감정대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남을 헐뜯고 사는 기질은 자신을 가시나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일단 마음 속에 이런 것들이 올라올 때, 바로 쏟아내지 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며 결단하는 성도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34.한 선교사가 원주민 마을에 갔는데, 그 날은 추장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축하한다고 하자, 추장이 뭘 축하한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이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드는 것인데, 그게 무슨 축하할 일이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교사가 추장에게 “그렇다면 언제 축하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추장이 하는 말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때 축하 받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35.나는 인생의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 하나님의 좋은 나무가 되는 축복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바라고, 그렇게 성장한 성도들을 축하하고 싶다. 성도님들 스스로를 돌이켜 보기에도 뿌듯한 성장이 있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시고 도우실 것이다.

36.바라옵기는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기대치를 만족시켜 드리고 자신의 인생 또한 가치 있고 성장하는 좋은 마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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