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7:9-22 “다니엘의 환상과 생활”
2024년 9월 29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1.내가 어렸을 때, 1999년이 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리가 있었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예언자의 책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많이 던져진 질문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당시는 냉전시기라 핵전쟁의 위협이 강했으니,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만도 했다. 여러분도 한번이라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2.그러면서 또 많이 인용된 말이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상이 타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말세”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언제 모든 사람이 정직하기만 하고 윤리적으로 힘을 쓰며 정의롭고, 서로가 화합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본이 될만한 시절이 있었는가? 그런 시절은 없었다. 3.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상의 낙원을 만들겠다고 애를 썼다. 아니 애를 쓴 정도가 아니라 그런 세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피해를 주는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세상을 더 큰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4.역사학자 “토인비”에 따르면 역사는 어떠한 도전에 대한 응전, 즉 맞받아 치는 것으로 발전해 왔다. 교회사도 보면,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서 성경의 권위를 침식하고 성경이 가진 초월성을 공격할 때, 여기에 대한 타협을 선택하기 보다는 더욱더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려는 응전이 나타났다. 5./중세 시대에는 로마 카톨릭이 성경의 권위 위로 올라가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교황과 자신들의 정치적 구조를 내세웠을 때, 여기에 대한 응전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진정한 개혁자는 예수님이셨다. 개혁이라는 것은, 특히 신앙생활에서의 개혁이라는 것은 대단히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6.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수준에 맞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받고서 나를 거기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의 개혁이요 발전이요 성장이다.
물론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에는 여러가지 신비하거나 초월적인 일들이 발생하면서 우리에게 경외로운 힘에 대한 신뢰를 제공한다. /감리교 신학의 기본적인 지침은 “성서, 이성, 전통, 경험”을 견제와 균형 가운데 유지하는 것이다.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는 신비주의자들을 보았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도 많이 보았다. 그들이 담대하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7.그러나 결국 그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성서의 가르침에서 벗어난다고 판단해서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래서 신비한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은 성서와 이성의 조명 아래에서 여과되었다. 신비경험을 한 사람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스스로를 교만하게 만들어 자신을 모두를 심판하는 판단자로 인식을 된다는 것이다. 8./물론 나도 많은 신비 체험을 목도하였다. 특이한 것을 이야기 해보자면, 내가 어렸을 때, 한 여자 집사님이 주일 예배에 참석이 어려워져서 아버지에게 카세트를 사주시면서 녹음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월요일에 테이프를 픽업해가곤 했다. 그런데 당시에 교회에 분란이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상적인 설교를 녹음한 테잎을 들어보니 놀랍게도 방언으로 녹음이 되어 있었다. 9.그리고 얼마 후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것이 교회의 회복에 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도 신비로운 체험을 한 것을 이야기하자면 할 말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혹시 신비한 체험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성장해야 할 부분은 단지 흥분속에 남에 대한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상의 신앙생활을 더욱더 단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10. 그리고 그러한 본을 보이는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꿈에 대한 해석으로 인하여 “느부갓네셀” 왕 때 자리가 높아졌다. 성경은 느부갓네셀의 꿈에 대해서 두번이나 기록하면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잘나가던 느부갓네셀은 경고의 메시지를 다니엘을 통하여 들었지만, 당장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자, 바벨론을 보면서 이것이 다 자기가 한 것이라는 교만한 소리를 했다. 11.그러자 그는 왕위에서 밀려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스스로를 짐승으로 생각하는 정신병에 걸려서 야외에서 살았다. 전에 내가 섬기던 교회의 교인이었던, 나에게 참 잘해주신 정신과 은퇴 박사님이 자기 경험을 이야기 해 주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자기는 “사자”라고 하면서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느부갓네셀 왕이 바로 그러한 병에 걸렸던 것이다. 이렇게 느부갓네셀 왕은 밀려나고 이어서 그의 아들이 왕이 되었는데 그가 “벨사살” 왕이었다. 12.그런데 왕권이 바뀌면서 다니엘 역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다니엘은 잊혀진 듯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놀라운 환상을 보여 주시며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에 대해 보이신다. /오늘 본 장은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침상에서 꿈을 꾸며 환상을 받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13.그는 천상의 보좌를 보았고 10절에 보면 심판을 베푸는 책들이 펴 놓인 것을 보았다. 이 책에 대한 언급은 12:1-2에 적혀 있는데, 1절에는 환란이 있을 때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며, 2절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라고 한다. 14.이것은 신약시대의 부활과 최후심판에 대한 인식의 바탕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심판에 대해서 자각은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지향점이 소망적인 것으로 향하면 되기 때문이다. 같은 장 3절을 읽겠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다니엘은 13절에 보니 환상 중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 15.구약에서 신적인 존재에게 “인자(son of man)”라를 표현이 붙은 곳은 여기가 유일한데, 14절에 보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지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니, 그의 권세는 소멸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을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16.그리고 이어지는 내용들은 앞으로 세상에 어려움도 있을 것임을 알게 해준다. /성경에서 어떤 짐승이나 뿔이 나타내는 것은 새로운 세력, 새로운 나라, 왕 같은 것이다. 이것은 8:17-26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해석을 해주는 것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다니엘이 꿈을 해석하고 심지어는 꿈의 내용까지 알면서 사람들에게 놀라움이 되었던 것은, 어떤 도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천사를 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7. /다니엘서 8장을 읽어보면 다니엘이 관료로 있던 바벨론이 지나가고 메데(Media)가 일어나고 또 이것이 바사(페르시아)에 의해서 대체 되고 또한 이것이 헬라(그리스)에 의해서 바뀌는 것에 대해서 예견하고 있다. 다니엘서와 같이 앞으로 일어날 세상에 대한 놀라운 이상을 “묵시”라고 하는데, 다니엘은 정치적으로는 좌천된 상태에서 영적으로는 앞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세상의 놀라운 흐름을 보게 된 것이다. 18.//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벨사살 왕이 다니엘을 부른다.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던 거룩한 그릇에 술을 따르고 여자들과 파티를 열다가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나는 섬찟한 장면을 보았는데, 거기에 써진 글자를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벨사살 왕은 다니엘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19.정복왕국에서 왕자들은 원정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왕비는 다니엘을 기억하고 그를 부른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처음에 다니엘을 우습게 본다, 그래서 5:13절에 보면 다니엘이 자기 아버지 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랴고 묻는다. 즉 다니엘을 이방에서 잡혀온 포로로 우습게 여기는 말을 한 것이다. 20.우리가 알다시피 다니엘은 왕이 함량미달이라서 나라가 넘어갈 것이라고 해석하였고, 실제로 바로 그날 벨사살 왕은 죽고 메데가 나라를 빼앗았다. 마치 후백제의 “견훤”이 포석정으로 쳐들어가서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의 종말을 가속했듯이, 놀랍도록 신속하게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처리하신 것이다.
21.다니엘은 이미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상을 통하여 알고 있는 것이 있었기에, 자기를 하대하는 벨사살 왕 앞에서 기가 죽지 않고 담대하게 꾸짖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왕조가 바뀐 이 상황에서 놀랍게도 다니엘은 메데왕국의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일을 얼마나 잘하고 왕의 마음을 샀는지, 왕은 그의 자리를 높여서 더 힘있게 전국을 통치하게 하려고 하였다. 22.당연히 유대 포로 출신인 다니엘이 그러한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시기하고 싫어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해서든 다니엘의 흠을 잡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9장을 보면 메대의 통치가 시작되는 해에 다니엘은 예레미야를 읽고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만에 그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기 민족의 죄에 대해서 자신이 대표로 회개한다. 어린 시절에 잡혀온 다니엘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23.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그를 높여준 것에 대해서 유다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희망이 되며, 단지 세상적인 성공이나 명성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성생활에 있어서 모범이 되기 원하신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24.그래서 이것은 그의 일상 생활 속에서 꾸준하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니엘 12:10을 보면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하는 사람과 악을 행하나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며,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고 하고, 다음 절을 보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대신에 가증한 것을 세운 것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 25.우리가 신앙적으로 각성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공감하거나 원하는 대로 들리는 말씀을 은혜롭게 받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고 “이렇게 살면 안돼”라고 응전을 하게 하는 태도가 성도를 은혜 가운데 성장하게 한다.
몇 년 전에 청년들을 인도해서 수련회를 진행하였는데, 뭐든지 신앙에 대해서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에 어떻게 하면 신앙이 성장하냐는 아주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초신자인 청년에게서 주어졌다. 26.나는 대답하기를 수련회때 은혜 받았다고 느껴도 돌아가서 일상에 아무것도 안 하면 그것은 새어 나간다고 했다. 은혜는 결단을 촉구하고, 우리가 결단할 것은 하나님과의 매일의 삶 속에 교통하는 습관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즉 마음에 감동이 와도 매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습관 없이는 그 신앙이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27./오늘 본문에서 보았듯이 다니엘은 대단한 이상을 보았다. 이러한 내용들은 계속 이어진다. 즉 다니엘은 대국의 총리로서 세상의 흐름에 대한 선견지명을 하나님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이다. 예언서를 보면 굳이 유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대한 분량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훔”서는 앗수르에 대한 책이고,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책이다. 28.즉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며 우리가 이것을 알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대국들이 일어서고 쓰러지고 하는 거대한 이상을 목도한 다니엘은 그것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교만하게 하지 않았다. 나는 교회에서 꽤 잘하는 줄 알았지만, 어디에 갔다 와서 영적으로 교만해져 버린 사람들을 보았다. 29.신약에서 신비체험을 강하게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 그는 천상의 세계를 갔다 왔다. 그러나 그는 그 내용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비체험이 스스로를 영적으로 교만하게 만들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30.그래서 고린도전서9:27에 보면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 한다.
사람이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자기를 높이고 교만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설교도 원고에 의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31.설교하기 전에 기도와 성실한 준비로 성령님이 원고작성하는 시간에 역사하시기를 기대하면서 자기 사심과 사견을 내려 놓고 성경의 본문과 의도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2.사실, 반복되는 설교작성이 때로는 힘들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이렇게 일상적으로 원고를 작성하는 것이 목회자의 영성을 지키는 것이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길게 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놀라운 이상을 보고 천사와 교통하면서 대단한 신비체험을 했지만, 그가 그러한 역량을 가지고서 행했던 가장 강력한 본보기는 일상 속에 기도하는 삶을 꾸준히 유지했다는 것이다. 33./자신이 최고의 총리에 오르는 것을 시기한 사람들은 결국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약점으로 보고, 30일 동안 기도하지 못하게 함정을 파 놓았다. 물론 다니엘도 이것이 정치적인 함정인 것을 알았고, 자신이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도 알았다. 34.아마 다른 사람 같으면 30일만 기도 안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서 반대파를 싹 숙청해 버리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은 6:10절에 보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한다. 35.위대한 영성, 대단한 체험의 소유자는 자신의 흥분된 경험으로 자기를 세우거나 남들을 심판하는 말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상의 영성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으로 그 무게를 드러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도 영성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니 많은 방해와 충동과 어려움이 온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36.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날이 더우면 더워서 공부 할 수 없고, 추우면 추워서 할 수 없고, 날이 너무 좋으면, 이렇게 날이 좋은데 어떻게 안에서 공부할 수 있냐고 한다. /1738년 5월28일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는 성령의 깊은 역사하심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그가 변하고 교회가 바뀌고 영국사회가 변화하였다. 37.그런데 그가 항상 하던 것은 그의 침실 옆에 있는 작은 골방에서 시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곳을 “Power Room”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일상의 기도를 하던 그가 노년에 숨을 거두기 전에 한 말은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였다. 하나님과 일상에서 교통하는 것을 습관으로 가지는 것이 바로 가장 큰 영성의 열매이자 증거인 것이다. 38.우리는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과거에 했던 잘한 것만을 꺼내어서 자신을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한다. 물론 과거에 잘한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도 꾸준하게 하나님과 일상의 생활 속에서 교통하느냐는 것이다. 39.우리가 부부생활을 잘해서 존경받는 사람들을 보면, 순간적으로 얼마나 불같이 타올랐냐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그게 아니라, 꾸준하게 일상을 유지하고 중간중간의 시험을 이겨내며 온 것에 대해서 존중하는 것이다. 나는 성도님들이 놀라운 하나님과의 체험을 하기 바란다.40. /그리고 이것이 유익한 모습으로, 또한 절제되고 본이 되는 삶, 즉 매일의 삶 속에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기대만큼 성장하고 성숙하는 열매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놀라운 신비체험이 도리어 일상의 영성생활로 드러난 다니엘을 기억하며 주님과 항상 동행하는 가장 좋은 것을 누리는 열매가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