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 주일 2024년 11월 24일
시편 107:15-22 “감사와 말씀” (박성일 목사)
1.본 장의 첫 절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한다. /세상에는 보면서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뭔가 마음에 응어리진 것(grudge)때문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감사하게 행하신 것을 고백하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좋은 상황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다양한 상황과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2.그런데 자신이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을 하던, 아니든 간에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축복하신다. 우리는 마음 속에 있는 응어리라는 문제 때문에 평생 하나님의 선하심을 피해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감사함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갚아 주심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3.사람이 감사를 한다는 것, 그리고 항상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러한 성숙한 사람이 또한 감사할 일들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교구에 있는 성도님들을 심방하면, 집에다 무척 좋은 말씀 액자들을 달아 놓는 것을 보았다.
4.그런데 그 중에 제일 많이 붙어 있는 말씀이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절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리고 바로 붙은 말씀은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한다. /상을 살다 보면 항상 기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시험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다. 5.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음을 준비시켜야 한다. 훌륭한 군대는 전쟁이 나지 않았지만, 전쟁을 날 것을 상정하고 미리 미리 훈련하며 내공을 키우는 군대이다. 성도도 항상 기도하면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실제로 우리가 가장 약한 시간에 벌어지는 시험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6.그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버릇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하나님은 감사의 고백을 하는 입술과 마음을 사랑하신다./만약에 부부가 서로에 대해서 행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서로 섬긴다면 아이들이 잘못될 수가 없다. 그러나 항상 서로를 비난하고 분노를 쏟아내기 바쁘다면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아이가 바로 그러한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7.물론 세상에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우리가 감사를 잘 하는 사람 같았으면 감사하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습성을 들이고 그러한 습성 가운데 더더욱 성숙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 삶에 있어야 한다. 감사의 말도 해본 사람이 더 할 수 있다. 8.그래서 오늘 집에 돌아가서 감사한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쑥스럽지만 감사하다는 텍스트라도 한번 보내 보자. 매일 보는 가족들에게도 뜬금없지만 지금까지 감사한 것에 대해서 표현해보자. 내가 손해 볼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가까이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끊임없이 불평하고 부정적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부모라도 가까이 하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9.그러나 나를 인정해주고 감사의 말을 하는 부모님이라면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의 표현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특히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과 찬양을 올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고 , 우리의 찬양을 즐거워하시는 이시다. 10.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평강과 단단함이 선물로 어진다. 그러므로 자기가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대해서 인색했거나 소극적이었거나 마음을 닫았다면, 이것을 넘어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1.애초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천국을 가고 싶은 생각이 있겠는가?
오늘 본문은 시편 107편에 있는데, 우리는 107편에서 여러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4절을 보면 각지에서 모인 무리가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했고,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피곤하였다고 한다. 12.그래서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8-9절은 이렇게 찬양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채워 주심이로다.” /13. 누구도 결핍을 경험하기를 원하지 않고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어한다. 나는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한국 속담을 신뢰한다. 자기 마음에 여유가 다 사라져 버린 사람이 좋은 말을 할 수도 없고 덕스럽게 행동하기도 어렵다. 자기 마음에 만족함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 그 힘을 가지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14.그런데 자신은 선하게 행동했지만, 엉뚱한 반응을 겪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 속담에 “물에 빠진 놈 건졌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것이 있다. 나도 목회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수준으로 성도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움을 준 적들이 있었다. 15.그런데 그렇게 진을 다 빼놓은 사람들이 이제 목사의 수고에 감사해서 교회에 충성하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항상 필요 이상으로 도와준 사람들은 별로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도와 달라고 하더니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 들 수 있었다. 16.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자신을 다스리다 보니, “인간이 다 부족하고 죄인이지” 하면서, 스스로를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잡아 놓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시는 능력과 역량 즉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의 영혼에 만족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좋은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시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상처와 그늘에 잡혀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서도 그 원망의 끝이 하나님께 가 있기도 하다. 17. 그렇기에 온전하게 무언가를 받기를 간구하려면 먼저 자기의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과거를 넘어서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신앙의 역량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또 다른 예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사람인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였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도 교만한 자에게 고통을 허락하셔서 그들을 겸손하게 하셨고, 엎드려져도 돕는 자가 없었다. 18.이에 그들이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해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찬송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또 미련해서 죄악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그들의 악 때문에 고통 당하였고, 그래서 이들도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19./평상시에는 자기 멋대로 살다가 자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야 하나님을 찾는 행동은 민망한 것이다. 애초에 평상시에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혹시 민망하더라도 그들이 살길을 하나님으로부터 찾았기에 하나님은 인자하심을 베푸신다. /그런데 19절을 이들이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대하여, 20절에 나타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 방법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그가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즉 하나님이 위험에 처한 자들을 고치실 때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건지신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악한 상태에서 건짐을 받을 때, 단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안의 악한 것도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만 부르는 구급대원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다듬으시며 새로운 존재로 성장시키실 수 있는 분이시고 그러한 의도를 품고 행동하시는 분이시다. 21.어려운 일을 통과할 때, 하나님을 만나서 마음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면 비록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22절을 보면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 지로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겪은 억울한 일,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도 쉬지 않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도우신 일, 감사한 일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22.그러나 일단 감사의 고백을 하는 입이 열리면 하나님은 그 입술에 감사할 거리들을 채워 넣어 주신다. 결국 하나님과 교통하며 선한 것을 나타내는 사람은 그럴만한 역량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그러한 수준이 되지 못하면 자신에게 행해진 선의나 좋은 것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들을 하는 병들고 고립되어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23./내가 전에 정말 많은 작물을 길러보았다. 수십가지를 길러 본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해에는 딸기를 여러 개 심었는데,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액체 비료를 사다가 잘 먹고 크라고 그 위에 뿌렸다. 24.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서 보니 딸기 모종이 다 죽어 있었다. 물론 내가 준 것은 좋은 비료였다. 그런데 아직 힘이 없는 작은 모종이 그 비료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죽고 말았다. /25.즉 아무리 좋은 말씀이 부어져도 자기가 너무 연약하고 작은 존재라서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역량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을 수용할 수 없어서 떠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생명의 말씀, 구원의 주님이 옆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그릇이 작으니 주님의 말씀을 담을 수 없었던 것이다.
26.성도는 자신의 상황이 어려울수록 하나님이 보내주실 말씀을 기대하고 말씀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엘리야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죽은 줄 알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는 “갈멜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자신이 이세벨 여왕에게 위협을 당한다는 것을 보고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27.그래서 자신은 자기 조상만 못하니 죽기를 원한다고 한다(열왕기하19:4). 엘리야의 논리는 자기만 빼고 하나님의 사람은 다 죽었다는 것이었고, 이것을 반복하지만, 하나님의 산인 호렙에 이르러서 엘리야는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을 지나서 들리는 세미한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7000명을 남기셨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엘리야가 감당할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28.그래서 엘리야는 다시 일어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병거를 타고 하늘에 올랐다. 나는 대학시절에 흑인영가(Negro Spiritual)을 부르곤 했는데, 가사를 보니 어려운 노예생활을 하던 흑인 노예들의 지향점에는 바로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며 주님께 올라가는 엘리야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다. 29.성도가 어려움에 있을 때, 딴 생각을 하거나 혼자서 자신만의 논리싸움만 하지 말고 일단 성경책을 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복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 /30.107편은 이후로도 항해를 하면서 광풍을 만나 이러저리 구르며 고통받는 자들의 경우 또한 예를 들며,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30절에 보면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한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한다. 31.하나님은 바다를 잔잔케 하실 수 있을뿐더러 35절 이하를 보면 마른 땅을 샘물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107편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에 대해서 열거한 다음에 마지막 절인 43절에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고 한다. 32.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움을 통과한 사람이 그 감사함을 기억하고, 일상에서 상기하며 앞으로도 도우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서 기대하시는 우리의 발전된 모습이다. 상황이 어렵다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만 하나님께 메달리다, 이제 상황 좋아졌다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이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발로 차 버리는 사람이다. 33.야고보서 5:33을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한다. 결국 이렇게 항상 하나님과 교통할 만한 그릇을 키운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의 고백도 진실하게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이다.
34.메사추세스 주의 “플리머스”라는 항구도시에 가면 청교도들이 1620년에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자리에 “1620”이라는 비석이 새겨져 있고, 당시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돌아간 배는 복제해서 실물 사이즈로 만들어 놓았다. 근방에는 “Pilgrim hall museum”이 있어서 이들의 당시 생활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복제된 메이 플라워호를 보면 처음에 드는 생각이 “아니 이런 배로 150명 가까운 사람이 타고 왔다고?”는 것이다. 35.당시에 메이플라워호는 181톤급 이었다고 한다. /원래 영국에서 종교의 핍박을 피해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옮긴 사람들은 타락한 동네의 분위기로부터 아이들의 신앙의 정결성을 지키기 위해서 신대륙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존 로빈스”, “윌리엄 부르스터” 목사가 주동이 되어 35명의 청교도인들이 아메리카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36.나머지 인원들은 상인들과 선원이었다. 그리고 무려 66일간의 항해를 하면서 흔들리는 배에서 이들은 씻지도 못하고 차가운 음식을 먹었다. 이러다 보니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항해 중에 죽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11월의 추운 날씨였다. 그래서 먹을 것이 없고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102명의 승객 중에 절반이 사망하였다. 너무나도 혹독한 겨울이었던 것이다. 37./그러나 그 와중에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고, 지난 시간 핍박과 항해의 고통과 추위의 살인적인 피해가 있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거둔 곡식과 음식을 모아서 그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대단한 업적이나 성과나 재물이 생긴 것이 아니지만, 자신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며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께 성서의 가르침에서 추수에 대해서 감사드린 것에 맞추어 소박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38.그리고 알다시피 너무나도 늦게 시작한 나라가 세계최고의 강대국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중심에 놓고 살면, 우리는 감사라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감사는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능력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소통하시고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신다. 39.감사를 생각하는 이 계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것이 되고 그 자비하심을 진정으로 받는 감사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 주시는 하나님을 찬앙하고 기뻐하므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