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5-01-17 19:00
마태복음 4:1-11”시험앞에 선 예수님” 2025년 1월 19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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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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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마태복음 4.1-11시험앞에 선 예수님.docx (25.2K) [22] DATE : 2025-01-17 19:00:47

 마태복음 4:1-11”시험앞에 선 예수님”

2025년 1월 19일 주일 설교 박성일 목사

       1.내가 오하이오에서 부교역자로 섬길 때, 3일간 집회가 있었다. 시카고에서 오신 젊은 목사님이 강사였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자기 배에 바늘자국이 백수십개는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분이 그 아픈 고통 속에 신앙을 지켜온 과정을 들었고, 모두들 감동했다. 나도 크게 감동받았다. 2.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교인들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주일 친교가 끝나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저런 습성을 바꾸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교회에 복을 주시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이런 일은 더 과거에도 있었다. 내가 청년 때 아버지가 담임하던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섬겼는데, 보통 수련회에 가면 학생들도 뜨겁게 오랜시간을 기도했다. 그런데 그렇게 수련회 마지막 밤에 3-4시간을 뜨겁게 기도하고 울부짖던 아이들이 그 날 밤에 같이 온 학생을 따돌림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수련회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4.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나만 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기도원에 가면 시설이 상당히 열악하였다. 어떤 기도원 집회에 사람이 천명이나 모였는데, 너무나도 더운 여름이었고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었다. 그래서 집회 중간 시간에 사람들이 수도가로 몰려 들었는데, 사람은 천명인데 수도꼭지는 두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 명이 수도꼭지를 차지하게 되자 아예 자기아는 사람, 식구들 다 불러다가 독점해 버렸다. 5.그렇게 좋은 말씀을 듣고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의 결과는 덕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말씀을 들은 다음에 자신의 행동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무감각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코로나19 기간을 지나서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로 좋은 설교자를 찾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6.좋은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겠는가? 그런데 자기가 이것 저것 들으면서 듣는 귀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말씀 가운데 반성하며 성장하기 보다는 상대를 평가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만해진 것이요, 이것은 신앙의 성장이 아니라 퇴보이다. /반대로 어떤 성도는 설교시간에 들은 말씀을 잘 적어 놓고, 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말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순전히 받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굳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7.분명히 말하지만 은혜가 임해서 감격이 가득한 시간 뒤에 바로 시험이 올 수도 있다. 외부로부터 발목이 잡히는 시험이 있을 수도 있고, 스스로 교만해져서 시험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좀 전에 은혜 받고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 하겠다고 결단했는데 어떻게 시험이 올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말을 하기도 할 것이다. 8.그러나 은혜 뒤에 시험이 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진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은 은혜 받은 뒤에 감격하는 마음이 있을 때가 아니라 이러한 시험을 지나가고 난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다.

로마서 5:3-4을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한다. 9.우리는 소망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아마 누구라도 자신은 소망 없는 성도가 아니라 소망 있는 성도가 되고 싶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누구나 지향하고 사랑하는 소망 있는 성도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단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10.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연단은 은혜 뒤에 오는 시험을 넘어서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본을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보이셨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 놀랄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으며, “이렇게 또 나의 진위과 실력이 검증되는 구나, 이것을 잘 뚫고 나가야하겠다”고 생각하며, 주님께서 더 힘주시기를 간구하며 전진해야 한다. 11./오늘 본문 앞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서 세례를 받으신다. 세례요한은 자기가 세례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오셨냐고 하였고 예수님은 겸손의 표현을 사용하시며 세례를 받으시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고 하늘로부터 예수님을 기뻐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12.이렇게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로운 장면 다음에 나오는 것이 예수님이 광야로 가신 것이다. 본문 1절을 보면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한다. 즉, 시험한 자는 마귀이지만, 그 자리로 데려간 것은 성령이었다. 13.물론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심지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신경 써 주시는 분이신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약하고 미숙한 채로 내버려 두시는 분은 아니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이 거룩한 백성이요, 강한 군사가 되기를 원하신다. 14.왜 우리가 신앙안에서 성장하고 훈련을 받아야 하나면, 그렇게 단단해져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공동체에서 생긴 불편한 일 때문에 신앙의 길에서 떨어져 나갈 때, 어떤 이유를 댄다. 사실, 어떠한 사람 때문에 그렇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심지어 목사가 속 썩이는 교인이 있어서 급하게 마음을 정해서 교인들에게 인사도 안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목회한다고 해보자, 거기에는 속 썩이는 사람 없겠는가? 15.성도가 다른 성도와의 마찰 때문에 성질이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도 그 곳에도 시간이 지나면 똑 같은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국 누구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람 때문에 속 썩거나 화가나는 일은 세상 어느 곳에도 있기 마련이고, 유튜브나 케이블 TV에 나오는 아주 은혜로운 교회나 선교단체에도 그런 일은 똑같이 있다. 단지 내가 그 내부사정을 모를 뿐이다. /16.본장 17절에 보면 마귀의 시험을 통과한 예수님에 대해서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한다. 성도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교만한 소리를 멈추고, 불편한 소리를 하던 말투를 이제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말로 바꾸게 될 때, 바로 이 사람이 우리 옆에 가까이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거듭난 사람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7.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서 사역을 본격적으로 실행하셨는데 23절에 보니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한다. /우리 각자에게 시험 들기 쉬운 약한 부분이 있다면 이것을 그냥 묻어 두거나 숨겨두는 것을 넘어서서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약한 부분이 대적 마귀에게 공격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약한 것은 악한 것이다고 까지 하였다. 사실 우리가 시험 드는 패턴은 매우 유사하다. 18.항상 자신의 약점이 공격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이것을 고치는 사람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같은 공격에도 단단해진 스스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적은 우리가 더 약해진 틈을 기다린다. 현대의 전쟁도 상대편이 약해지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술수를 쓰고 거짓소문을 퍼뜨려서 상대편 지도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약하게 만든 다음에 공격을 한다.

19.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배가 고프셨다. 그리고 이렇게 가장 약할 때 시험하는 자가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혈기가 약점이라서 화가 나면 해서는 안될 말도 말 쏟아놓는다. 이런 태도는 상대방에게 실망을 넘어서는 감정을 주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하는 말이 그 때는 화가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20.화가 나면, 즉 자신의 통제가 약해지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에 “지금이 위험한 때이다, 지금이 조심할 때다”라고 아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21.예수님은 떡을 만들라고 시험하는 마귀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응하신다. 그랬더니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예수님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 내리라고 한다. 22.그런데 아까 예수님이 말씀을 인용하여 대응하셨던 것처럼, 마귀는 시편 91편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공격한다. /우리가 자신의 탐욕이나 정욕에 연관된 시험에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앙적인 색깔을 입은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즉 겉으로는 성경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경건한척 하면서 공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23.실제로 이단들을 만나보면 내 영혼을 삼키려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세상에 이렇게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없다. 게다가 자기 스스로 성경에 대해서 크게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부분적인 것을 가지고 성경에 있다고 내세우는 주장 앞에서 꺾이기도 한다. 24.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치려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대응하신다. 그리고 마귀는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한다. 25.여기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대응하신다. 그리고 이제 마귀는 예수님을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 예수님을 수종 들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가 남동생을 임신하고 당시에는 늦은 나이에 출산을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40일 금식기도를 하신다고 추운 겨울에 산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26.그래서 동생이 태어날 때에는 아버지가 옆에 계시지 않았다. 당시에 금식 후에 찍은 아버지 사진을 보니 30대인데도 나이가 훨씬 들어 보였다. 사람이 영양을 공급받지 않으면 판단이 흐려진다. 한마디로 약해진다는 것이다. 27.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신의 아들이고 초월적인 능력도 행사한 분이지 않으신가, 그러니 시험도 쉽지 않았겠는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부러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몸소 겪으셨다. 예수님은 유령 같이 고통을 당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28.예수님이 얼마나 식사를 잘하는지 적대자들이 붙인 별명이 먹기를 탐하는 자였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구원계획의 과정일 뿐 아니라 우리의 본이 되시기도 한다. 즉 초월적인 존재의 간단한 장난이 아니라, 우리의 본이 되기 위해서 강력한 부분들을 일부러 내려 놓으셔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셨다. 29.그러므로 부활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통과하심으로 우리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부여된다는 자신감을 주셨고, 이것은 이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도 하지 못하고 겁은 많아서 다 도망가버렸던 제자들이 변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예수님도 시험을 통과 하셨는데 나는 모든 어려움을 싹싹 피해가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판단하고 주장하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미숙한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다. /30.나는 미국에 와서 참전용사들을 여러분 보았다. 전에 살던 아예 지역에서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역분들의 사진을 도로를 따라서 깃발로 만들어서 1년 내내 게시하였다. 전쟁 때 못 먹고 살았다고 고생한 분들의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지만, 정작 군사훈련을 받고 위험한 전쟁터에 나가서 투신한 분들을 보면 그러한 과정을 통과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존경과 애정이 샘 솟는다. 31.물론 오늘날 평화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의 시험은 훨씬 더 사적이고 작은 부분으로 들어온 것을 수시로 경험하게 된다.

본문 다음 장을 보면 그 유명한 산상수훈을 담고 있는데 22절에 보면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신다. 형제에 대해 “라가”(무가치하다, 머리가 비었다)라고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한다. 32.이것은 그만큼 스스로를 화가 나게 할 시험이 있었음을 전제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일이 생기면 나와 갈등이 생긴 당사자도 나에게 화가 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지어 예물을 드리러 제단에 왔다가도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형제와 화목하고 돌아와서 드리라고 한다. 33.즉 시험에 빠진 마음을 벗어버리고 그것을 이겨내고 해결하고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감정 상하는 일이 생겨서 시험에 빠지는 것을 경험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벌어진다.  34.그런데 시험에 빠져서 자기자신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러한 불씨를 사방에 퍼트리고 다니기 때문에 더 큰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마태복음 5:9에 보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한다. 35.자기 스스로를 평강케 하는 힘을 넘어서서 공동체에도 화평을 가져오게 하는 사람(peace maker)은 듣기 좋게 우리끼리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시험도 이기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이다. /36.심지어는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시험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신다(10).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욕먹고 박해 받고 거짓으로 악한 말을 듣게 될 때에 복이 있다면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신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것이다. /37.역사를 보면, 예수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빼앗기거나 핍박 받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있고 한국 초대 교회사만 보더라도 예수 믿는다고 시어머니에게 머리채 잡히고, 남편에게 동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구타 당한 일은 수두룩 하다. 38.그러나 그러한 시험을 말씀을 잡고 이겨낸 신앙의 어머니들 덕에 가정이 복음화 되었고 하나님의 일꾼들이 자라났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동기가 없었는데, 교회 다닌다는 것 때문에 구타도 당하고 욕도 많이 먹었다. 아주 불편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신앙이 더 강해졌다. 39.오늘날 시험을 맞이하면서 그러한 상황을 원망만 하고서 남을 탓하면서 사라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자신이 성장할 기회로 알고 그러한 파도에 올라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40.몇 년 전에 “말리부” 해변에 갔더니 사람들이 파도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올라타면서 너무나도 멋있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시험에 꺾여서 죽을 때까지 원망만 하고 남탓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험의 파도를 타고 오히려 빛나는 모습을 보이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한다. 41.예수님이 우리의 본이 되셨고 우리의 시험을 공감하시며 이겨내는 우리에게 상을 준비하신다.

바라옵기는 불 같은 시험 많은 세상이지만 말씀에 온전에 서서 맞받아 치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시험을 넘어서는 존경받고 신뢰받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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