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4-12-13 17:52
2024. 12.15 (대강절) 요한복음 10:3-18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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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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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5 요한복음 10.3-18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docx (34.3K) [47] DATE : 2024-12-13 17:52:44

                                  2024. 12.15 (대강절)

요한복음 10:3-18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박성일 목사)

        1.요새 드론 (drone)을 이야기하지만, 무선으로 무인 비행체를 날리는 기술은 이미 2차 세계대전부터 사용되었다. 미국도 2만대에 가까운 무인 비행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1944년 “데이빗 코노버”(David Conover)라는 사진작가는 무인 비행기를 만드는 공장에 갔다가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젊은 여성을 보았고, 이 여성을 모델로 삼았다.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은 이 일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었다. 2.이 여성이 바로 “마릴린 몬로”였다. /우리가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그것의 가치를 보는 눈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전에 코미디 프로를 보았는데 여자 코미디언들이 하는 말이 “야,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배우는데, 이런 것보다 남자 제대로 보는 눈을 키우는 걸 가르쳐야 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웃기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3.과연 우리에게 좋은 사람, 내 삶의 진정한 인도자를 알아볼만한 분별력이 있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을 살면서 이러한 분별력이 없으면 거기에 따른 아주 처절한 대가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이 유명세를 타고 있었을 때, 자기 고향을 방문했다. 그는 평상시에 늘 분장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4.그런데 마침 고향에서 “찰리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찰리 채플린도 이 대회에 참가했다. 자기를 흉내 내는 대회에 자기가 참가한 것이다. /그리고 채점이 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찰리 채플린이 우승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진짜 찰리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서 3등을 했다는 것이다.  

        5.나는 상대방의 단편적인 이력이나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서 선택을 했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는데, 우리의 영혼을 이끌고 갈 대상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분별력이 있어야지 선한 것을 얻을 수 있고, 그 인생이 의미 있게 되고 영원의 삶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과 참을 분별할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이러한 능력은 단지  귀를 만족시키거나 자기 감정과 기분에 따라서 하는 수준으로는 배양되기 어렵다. /6.때로는 몸에 좋은 약이 쓰기 마련이다. 반대로 우리의 몸을 망치는 것들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있거나 달다. 그래서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자기가 망가져 가는 것을 인지하고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가능성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가 정신을 차린 사람은,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잘 도울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을 실제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7.사실 우리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없다. 막 혼자 잘 할 것 같아도,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짧은 시간에 판단해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막상 자기가 그 분야에 대한 정보도 적고, 경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8.10분 후의 인생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인생전체의 방향을 정하고, 이후의 세계까지 준비한다는 것이, 자신만의 지식이나 능력으로 가당키나 한 것이겠는가?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값진 것들의 가치를 망각하는 시간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도 그것과 친밀해지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쉽고, 뭔가 자극적이고 대단한 것을 해야만 삶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9.어른들도 아이들도 즐겨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소녀가 그 안의 꿈을 찾아서 액션 배우나 가능한 놀라운 행동을 하며 괴물을 쳐부수고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완수한 다음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20미터짜리 괴물은 고사하고 욕실에 들어온 자기보다 수만 배 가벼운 거미만 봐도 기겁을 하고 난리를 친다. /10.어떤 이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자기에게도 저런 삶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만족스러워 하지 못한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는가? 자기는 세상에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이고 모두들 나를 인정하고 세워줘야 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 때문에 내 삶이 잡혀서 이렇게 산다”고 원망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겠는가? 11.나는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 자기 감정과 상관없이 정말 중요한 것은 그대로  받아 들일  있는 냉정한 분별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주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감정이 상한 것 위에다 논리를 붙이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다. ////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자 되신 분이시다. 그리고 오늘 본장인 10장에서 보게 되는 것은 진정한 목자와 양의 관계는 제대로  분별력 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을 실제로 보면, “저런게 어떻게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12.실제로 진화론에서는 발달한 개체만이 생존해서 그 특성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그렇게 신체적 조건마저 변화한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에 정 반대로, 굉장히 불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세대를 이어나가는 많은 개체들이 있다. /우리가 입는 옷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옷감을 제공하는 양은 그 자체로는 방어수단도 부족하고 빠르지도 않기 때문에 목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13./베들레헴 근처에 가면 “목자의 들”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지하로 파진 굴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을,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심을 알리는 곳으로 꾸미고 예배당을 지어 놓았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시자, 달려가서 경배한 대상들이 바로 밤 중에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다. 14.예수님 당시만 하더라도 상업이 발달하면서 유목업은 그 사회적 위치가 상당히 밀려 있었다. 대부분 여러 사람이 양을 모아서 목자에게 주면 그 사람이 대신 양을 먹이고 다녔다. 그래서 남들은 자기 집에서 잘 때, 목자들은 들판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이렇게 양을 치는 목자라고 하신다. 그것도 돈 받은 만큼만 일하는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라는 것이다.

       15.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윗은 양을 치다가 사자나 곰이 덤벼 들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맞서 싸웠다. 그런 위기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가 감히 골리앗에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그렇게 용감하게 양들을 지킨 것은 그 양이 자기네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시간당 돈만 받고 일하는 목자라면 굳이 자기가 어려움 겪으면서까지 사자와 곰과 맞설 이유가 없고, 12-13절에 표현된 것처럼 도망가 버린다. 16.당연히 이렇게 되면 자기를 지킬 목자 없이 양들은 맹수들에게 물어 뜯기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목자가 중요한데, 비록 양들이 어리석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있는 아주 중요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들의 목자의 음성을 알아 내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영양 떼는 앞에 리더가 뛰는 대로 그냥 수천 마리가 뛰어가는데, 리더가 절벽으로 가면, 그래도 무조건 따라가다가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17.그러나 우리 목자 되신 분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꼴(grass)을 먹이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stable)에서 쉬게 하기도 하신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아까 이야기 했듯이 여기저기서 온 양들이 섞여 있지만, 이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구별할 줄 안다. 그래서 자기가 따라가야 할 대상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18.이렇게 목자는 그의 양을 부르고,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서 따라가는 것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성도들의 관계를 설명하신 것이다. 양이 목자의 소리를 듣고서, “아 저 목자를 따라가면 내가 살겠다, 내가 안전하겠다”는 생각으로 따라가야 하지만, 어떤 양들은 목자의 소리를 듣지 않기에 따라가지 않는다. 19.이런 양들은 안타깝지만 주님의 양이 아니다. 본문 26-27절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너희가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양은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인정한다는 것은 꾸준하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세상의 수 많은 상황과 판단의 순간 속에서 주님이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선택을 하는 것으로써 그 중심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가는 좋은 양이 되는 방법이다.

        20.양을 생각하다가 양치는 개도 생각해 보았는데, 알다시피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독일의 “쉐퍼드”가 가장 유명한 양치기 개이다. 내가 군생활을 할 때, 근무하던 부대에 대테러 훈련을 받으러 쉐퍼드 30여 마리가 왔었는데, 그 위엄이 상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국산 토종인 진돗개는 상당히 훌륭하고 똑똑하지만 군견이나 경찰견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21.독일산 쉐퍼드는 담당하는 관리자가 바뀌어도 사흘이 지나면 이것을 인지하고 따르는데, 진돗개는 원래 주인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하기 때문에, 관리 인원이 교체되는 군견이나 경찰견으로는 사용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개조차도 자기의 충성을 바치는데 그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람이 그냥 자기 감정에 따라서, 정말 좋은 것을 주셨고 자신을 사랑하는 주님을 떠나거나 배신하거나 잊어버리기 일수이다. 22.여기에는, 태만해졌다 거나 어떤 바쁜 일이 생겼다 거나, 실상 섭섭한 일이 생겼다 거나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목자가 양을 어깨에 매고 돌아오며 기뻐하는 그림을 보았을 것이다. 이 양은 길을 잃고 헤매던 양이다. 그런데 실제로 당시에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는 양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양치기에게 감동하지만, 그 동안 나머지 99마리의 안전과 생활이 위협받고 어려워 지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23.그래서 목자는 일부러 자기 멋대로인 양의 다리를 부러뜨려서 매고 온다. 다시는 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잃어버린 양이 악한 짐승에게 찢겨 죽을까 봐 애타는 마음으로 찾아 나섰지만, 어느 정도의 각성의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기 멋대로 주님 품을 떠나 헤매다가 어려운 고통의 과정을 통해서 돌아오기도 한다. 24.그 때, 자각이 생긴 사람은 그것을  살 길로 받아 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냥 당장 닥친 섭섭한 생각만 머리에 가득 찬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렸다 찾은 줄 알았으나 얼마 안 되어서 또 잃어버리는 일들이 발생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기분이나 감정을 맞추어 준다고 그 대상이 선한 목자인 것은 아니다. 25.구약에 나타난 거짓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이 악한 방향으로 갈 때, 그렇게 해도 된다고, 듣기에는 굉장히 부드럽고 좋은 말하던 사람들이었다. 신앙의 분별력을 단지 친절함이나 듣기 좋은 소리에 두는 것은 그냥 “나 잡아가라”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본문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시면서, 자신은 양들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분이라고 하신다. 26.악한 사탄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할 상태에 있으면서 그렇게 멸망하기를 바랐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사 자기 생명을 바쳐 멸망의 길로 가는 양들의 죽음의 행진을 막으셨다. 요한1서 3:8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여 하심이라.” /27.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을 들이는 우리의 문으로도 표현하시는데, 9절을 보면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신다.  /10절을 보면, 세상에는 그럴듯한 말로 양들을 속이는 도둑들도 많지만, 결국 그들의 목적은 상대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28.그러나 같은 절에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심이라고 한다. //여러분은 살면서 삶에 대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삶에 대한 의지는 사라지고 마음은 부정적이고 불편하고 좋지 않은 생각이 가득 차 있는 상한 영혼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우리 대적에게 딱 먹히기 쉬운 표적이다. /동영상을 보니, 수족관에 물고기들이 있는데, 서로 잘 있다가 하나가 상처가 나니까 막 물어 뜯어서 잡아 먹는 것이었다. 29.우리는 풍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얼마나 오래 살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비참하게 우리 대적에게 뜯겨서 죽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제대로 된 대상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16절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도 인도 하시겠다고 하신다. 30.이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강제로 하게 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예수님 스스로 생명을 놓으심을 18절에 알게 하신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명 주시고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주님의 결연한 말씀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흠을 잡는다. 31.본 장 바로 전의 기사가,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사람을 고치신 일인데, 이 사람이 보게 되니, 예수님의 적대자들 때문에 오히려 위협을 받았지만, 이 사람은 주님께 믿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5장을 보면, 38년 된 병자를 자유하게 해주셨지만, 예수님이 그에게 죄 짓지 말라고 하시니, 그것에 감정이 상해서 앙심을 품고 예수님을 고발하였고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이것을 근거로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다고 한다(16). //32.내가 선한 목자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고, 왜 저기로 가는 것인가 하면서 의심이나 불만이 생기기도 하고, 이 경우에 감정 상할 건수만 생기면 목자를 원망하면서 자기 멋대로 가겠다고 하고 다른 양들을 흔들거나 선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양들끼리 하는 소리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33.그리고 그 소리가 단지 자기 욕망이나 상한 감정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신앙적으로 세워진 말인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너무 의롭고 공정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늘 마음 속에 남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눈을 들어서 우리의 부족함과 죄성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주님의 은혜를 크게 보게 한다. /34.게다가 불만의 시각을 버리고 보면 보이는 좋은 것들….. 우리가 누리는 평화나 안전, 자유, 구원…이 모든 좋은 것들이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 위에서 주어진 귀한 것들이다. /몇 해 전, “장사리 상륙작전”을 다룬 영화를 보았다. 북한군이 남한을 낙동강 남쪽으로만 남기고 몰아세운 상황에서, 인천상륙작전을 해야 했고, 이것을 위한 일종의 기만 작전으로 장사리에 상륙작전이 벌어졌다. 35.인류 역사상 가장 대단한 규모의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상당한 기만작전의 성공에 도움을 얻었다. 그런데 장사리에 상륙하는 이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의 상당수는 사실 군번도 없고 군복도 받지 못한 교복을 입은 학도병들이었다. 많은 수가 작전에 성공하고도 돌아오지 못하고 해변에 남겨졌다. /36.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으면 우리는 지금도 김씨 일가의 치하에서 억압 받으며, 예수 믿으면 죽임 당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 어린 10대 학생들은 투지를 불태우며 싸웠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분 들이 흘리신 피의 열매를 먹고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바른 마음이 있어야 한다. /37.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같이 어리석은 양들을 살리시고 영생하도록 하고자 하신 것이었고,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위해서  사랑을 드러내셨다.  /38.한번 사는 인생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 나의 목자는 진정코 누구란 말인가?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열매를 맺게 될 터인데, 우리를 부르시며 풍성케 하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라가는, “주님의 양”인 성도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열고 따라가는 예수님의 양이 된 성도, 그리고 그 삶에 예수님을 따라간 흔적이 남는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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